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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와 인공강우, 그리고 ‘벌거벗은 임금님’
미세먼지와 인공강우, 그리고 ‘벌거벗은 임금님’
  • 김명서
  • 승인 2019.03.1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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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관련대책 발언 비난 자초...경위 밝혀 ‘국가원수 기만죄’-‘국민 기만죄’ 책임 물어야

[김명서 칼럼] 답답하기만 하던 미세먼지 해법이 비로소 제 길을 찾아가는 것 같다.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동안의 논란은 해야 할 일은 제대로 안하면서, 가능성이 없는 방안을 할 수 있는 것인 양 목소리를 높인데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청신호는 지난 13일 미세먼지 관련 법안들의 국회 통과다. 그 중에서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개정해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에 포함시킨 것은 의미가 크다. 미세먼지에 대한 기본적 인식, 그에 따른 대처 방안이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재난이 무엇인가. 불가항력적으로 들이닥쳐 크나 큰 피해를 일으킨 천재와 인재를 일컫는다. 그에 대한 대책은? 현실은 인정하되 피해를 최소화하고, 조속한 수습에 매진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단칼에 해결하기 어려운 미세먼지 대책...차량 2부제 등 강력한 조치 수시로 등장할 듯

이제 미세먼지는 경우에 따라 전염병과 다름없이 다뤄지게 됐다. 몇 년 전 메르스 사태 때를 떠올리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단속과 점검, 제한과 통제는 기본이다. 이런 저런 반대에 막혀 제대로 시행이 안 된 차량 2부제 운행, 석탄화력 발전소 가동 중지 등 강력한 조치들도 수시로 등장할 것이다. 생계용 차량을 제외한 모든 개인차량 운행 중지 같은 특단의 대책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진작부터 이렇게 풀어나갔어야 했다. 미세먼지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묘책은 없다. 게다가 대기 흐름 등 자연 현상에 따른 악성 미세먼지에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태반이다. 지난 번 1주일 이상 계속된 ‘초유의 미세먼지 사태’가 대표적이다. 현실적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사전적이든, 사후적이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정부, 특히 미세먼지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상당수가 현실에 어긋나고, 비효율적이며 비합리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미 나왔던 대책들을 재탕, 삼탕했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었나. 따지고 보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도대체 정부가 뭘 하느냐는 비난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무엇이라도 내놓아야 하는 담당 공직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런데 딱 하나, 인공강우 문제만은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닌 것 같다. ‘국가원수 기만죄’, ‘국민 기만죄’의 정황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인공강우가 미세먼지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 내려진 정설이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이를 괜찮은 해결책인 것처럼 내세웠다.

문제의 시작은 ‘초유의 미세먼지 사태’ 가 최고조에 이른 지난 6일 국무회의. 문재인 대통령은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중국과 공동으로 인공강우를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중국 쪽에서는 우리 먼지가 중국 상하이 쪽으로 간다고 주장하는데, 서해 상공에서 인공강우를 하면 중국 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TV뉴스에는 이 장면이 특히 부각돼 나왔다. 대통령의 언급이니 만큼 인공강우, 이를 통한 미세먼지의 해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게 할 여지가 컸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인공강우 언급, ‘기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 무소신-무책임의 극치

그런데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다음 날인 7일 언론 상대 긴급 브리핑을 갖고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중국이 내륙에서 시행했던 실험과는 달리 해상 혹은 연안 지역에서 실험함으로써 새로운 미세먼지 저감의 가능성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려진 대로 중국은 인공강우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인공강우를 통해 미세먼지를 줄였다는 기록은 없다. 그런데 내륙과 달리 바다에서 실험을 하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인공강우 공동실험을 제안하겠다는 것이 조 장관 답변의 요지다. 인공강우, 미세먼지 저감, 중국의 수락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는 게 없다.

조 장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성사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기면 좋고 아니면 말고’...‘유체이탈’식 화법이란 조 장관의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진정성이라곤 없는, 무소신, 무책임 그 자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조 장관은 국무회의 하루 전인 5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에게 미세먼지와 관련한 환경부 대책을 보고했다. 과학적 전문성이 필요한 인공강우 문제를 문 대통령이 개인적 의견으로 밀어붙였을 것 같지는 않다. 설혹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주무 장관으로서는 제대로 걸렀어야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22일 국무회의에서도 인공강우를 언급했었다. 되짚어보면 이 역시 환경부 쪽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문대통령은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인공강우, 고압분사, 물청소, 공기필터 정화, 집진기 설치 등 새로운 방안들을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인 23일 환경부와 기상청은 인공강우 실험을 25일에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치 의미 있는 성과라도 거둘 수 있는 것처럼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비는 내리지 않았다. 당연히 ‘면피’에 급급한 ‘졸속 행정’, ‘전시성 행정’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그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결과적으로 보면 문 대통령은 인공강우에 관한 한 비난을 자초한 셈이 됐다. “환경 관련 전문지식이 전혀 없는 대통령이 나서서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는 건 권위주의 시대의 악습”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이 떠오른다. 동화에서 사기꾼 재봉사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지어드리겠다. 그러나 이 옷은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임금님을 속였다. 혹여 어리석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임금님과 신하, 길거리 시민 등 어른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얘기를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인공강우를 두 차례에 걸쳐 거론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재봉사’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 경위는 밝혀져야 하고, 그에 맞는 책임 추궁도 가해져야 한다. 과학은 요행도 아니고, 아부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된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전 서울신문 정치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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