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이동준기자] 현대·롯데·대우 등 대형 건설업체들이 서울 강남의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수억원대의 금품을 뿌린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서울 강남권 재건축 지역의 시공사 선정 총회를 앞두고 2억3000만~28억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조합원에게 제공하거나 제공하려 한 현대건설·롯데건설·대우건설 법인과 임직원, 홍보대행업체 관계자, 조합원 등 총 334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은 이전부터 재건축 현장에서 건설업체들이 시공권 확보를 위해 투표권을 가진 조합원들에게 경쟁적으로 금품을 제공한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1월 대우건설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4월 현대건설, 8월 롯데건설에 대한 압수수색을 해서 증거를 확보했다.
현대건설은 전무 등 7명, 롯데건설은 부장 등 14명, 대우건설은 부장 1명이 각각 송치됐다. 이들 건설회사들과 계약을 맺고 범행을 함께 한 홍보대행업체 3곳의 대표와 직원 총 293명도 불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또 현대건설의 돈을 챙긴 조합총회 대행업체 대표 등 10명, 롯데건설의 돈을 받은 조합원 9명도 적발돼 검찰에 송치됐다. 돈을 받은 조합원은 총 1400명에 달하지만, 경찰은 이들 중 영향력이 크고 금품을 많이 받은 사람들만 송치했다. 건설업체들은 지난해 9∼10월 서초구 반포동과 송파구 잠실동의 재건축 시공사를 선정하기 위한 총회를 앞두고 홍보대행업체를 내세워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명품가방에 호텔숙박권, 태블릿PC까지 제공
현대건설은 총 28억원 상당을 조합원 매수 목적으로 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는 조합원들에게 제공하려다 실패한 금액도 포함돼 있다.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된 서울 반포주공1단지(1·2·4주구)는 단군이래 최대 재건축단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이며 총 사업비가 10조원에 이른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9월 이 지역 재건축 시공사 선정 총회를 앞두고 조합원들에게 현금·명품가방 등 1억1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다. 현대건설은 또 조합총회 대행업체가 조합원 접촉이 용이하다는 점을 이용, 은밀히 현대건설을 홍보해주는 대가로 대행업체 대표에게 5억3000만원을 제공하기도 했다.
롯데건설은 총 12억원 상당을 조합원 매수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9월 신반포 15차 재건축 시공사 선정 총회를 앞두고 조합원들에게 현금·고급호텔숙박권·태블릿PC 등 2억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다. 롯데건설은 자사 계열사 특급호텔에 조합원들을 불러 좌담회를 한다는 구실로 무료로 숙박을 하게 해 주거나 "제안서를 저장해뒀으니 읽어보라"며 태블릿PC를 건넨 뒤 돌려받지 않는 수법으로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우건설은 신반포 15차 재건축 시공사를 두고 롯데건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2억3000만원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하거나 제공의사를 표시했다. 대우건설은 조합원 신발장에 슬쩍 선물을 두고 오거나 경비실에 맡기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건설업체 직원들 홍보대행업체 법인카드 사용
건설업체 직원들은 홍보대행업체 선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용해서 이들 업체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건설 부장 2명은 홍보대행업체에서 4000만원과 6000만원을 수수했으며 롯데건설 직원 9명은 홍보대행업체 법인카드를 받아내 총 3억원을 쓰는 등 '갑질'도 만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에게는 배임수재 혐의가 적용됐다.
건설업체 직원들은 홍보대행업체에 용역 대금을 지급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고 있다. 금품·향응 제공은 홍보대행업체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홍보 용역대금을 줬을 뿐 금품을 제공한 것은 대행업체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홍보대행업체 직원들이 건설업체 명함을 소지하고 조합원들에게 접근했던 점, 대행업체가 금품 제공 내용을 건설사에 일일이 보고했던 점에 비춰 건설업체에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홍보요원들은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개인카드로 선물 등을 사들여 제공한 후 건설업체로부터 비용을 정산받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합원들에게 제공한 금품이 모두 홍보 용역비로 책정돼 결국 시민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로비를 벌인 결과, 현대건설은 반포, 롯데건설은 잠실, 대우건설은 신반포의 아파트 재건축 시공권을 따낸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