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장사’로 연명하는 금융산업과 중세시대 만도 못한 소비자
‘이자 장사’로 연명하는 금융산업과 중세시대 만도 못한 소비자
  • 권의종
  • 승인 2018.10.0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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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쟁 속 우리나라 은행들만 '두문불출'...한국경제 첨병으로 나설 절호의 기회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경제는 불황인데 금융은 호황이다. 은행들마다 '즐거운 비명’이다. 국내 은행들이 올 상반기에 벌어들인 이자수익은 19조 7000억 원. 순수익은 8조 4000억 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00억 원 늘었다. 반대로 기업들은 ‘죽을 맛’이다. 코스피 상장 12월말 결산기업 536개사 중 삼성전자를 뺀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0.2% 증가에 그쳤다. 순이익은 7.3%나 줄었다. ‘손쉽게’ 돈버는 은행과 ‘힘겹게’ 버티는 기업의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은행의 호실적을 나무랄 순 없다. 산업이 힘들다고 은행까지 어려워져야 할 이유는 없다. 은행이라도 형편이 좋은 게 그나마 다행일 수 있다. 빚에 허덕이는 서민이나 기업들을 상대로 예금이자와 대출금리의 차이로 고수익을 올리는 행태가 문제일 뿐이다. 올 상반기 은행들의 예대금리 차이는 2.08%에 달했다. 작년 상반기 2.01%에 비해 0.07% 포인트가 올랐다. 비(非)이자 이익은 33% 감소한 3조 원에 불과하다. 80% 이상을 ‘이자 장사’로 벌어들인 셈이다.

대출 금리는 재빨리 많이 올리면서 예금 금리는 뒤늦게 찔끔찔끔이다. 은행들의 얄미운 고전적 수법이다. 이에 대한 지적이 그동안 수도 없이 있었지만 개선은커녕 오히려 악화되는 추세다. 지난 7월 기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3.44%로 지난해 12월보다 0.02% 포인트 오른 반면, 순수저축성예금의 평균금리는 1.81%로 0.01% 상승에 그쳤다.

얄미운 은행들... 대출 금리는 ‘재빨리, 많이’, 예금 금리는 ‘뒤늦게, 찔끔’

대출금리를 상습적으로 부당하게 올려 징수해온 은행들도 있었다. 가산금리 산정에서 대출자 소득을 누락하는 등 금리를 조작해온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가계대출 규모는 어느 새 1500조 원을 넘어섰다. 금리가 0.1% 포인트만 올라도 1조 5000억 원의 추가 부담을 져야 한다. 예삿일이 아니다.

금융산업에 대한 과보호도 문제다. 국내 은행들은 은행업 면허라는 높은 진입장벽 덕분에 안주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독과점 내수산업으로서 사실상 경쟁의 무풍지대를 살아왔다. 우연의 일치일까? ‘은행(bank)’의 어원이 11세기 이탈리아의 환전상이 달랑 긴 탁자(banka)하나 놓고 장사한데서 유래되어서인지, 국내 은행들도 그간 전국 어디서나 가게만 열면 큰 힘 안들이고도 수익 창출이 가능했다. 

‘이자 장사’만으로는 경쟁력을 보전할 수 있던 호시절은 끝났다. 부실한 비즈니스 모델로는 금융환경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버텨내기조차 힘들다. 정부가 9ㆍ13 부동산 대책으로 대출규제 고삐를 죄자 은행들마다 수익성 확보에 비상이 걸려있는 지금 상황이 이를 잘 설명한다. 수익 다변화를 촉구하는 경종(警鐘) 소리를 흘려 들었다간 금융산업의 종말을 알리는 조종(弔鐘)이 될 수 있다. 선진국처럼 은행 총수익에서 이자수익과 비이자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을 적어도 5대 5 수준까지는 가져가야 한다.

해외 진출을 통한 사업 다각화 노력도 긴요하다. 본디 은행업은 국제간 거래에서 시작되었다. 중세시대 베네치아, 제노바 등 이탈리아 큰 도시들마다 정기시(定期市)가 들어섰고, 시장에는 원거리 무역상을 상대로 환전을 해주고 어음과 신용장을 취급하는 뱅커(banka)들이 있었다. ‘은행(銀行)’이라는 말도 중국의 상인 길드인 ‘행(行)’이 원거리 무역에 ‘은(銀)’을 사용했고, 이 행이 금융업의 주체가 되면서 유래되었다. 금융 국제화는 피하기 힘든 대세가 된지 오래다.

비(非)이자수익 비중 늘리고...해외 진출 통한 사업 다각화 노력도 긴요

대출금리에 비해 예금금리를 현저히 낮게 책정하는 그릇된 관행도 고쳐야 한다. 지금처럼 은행이 금리를 결정하는 구조에서는 예금자에게 불리한 결정이 불가피하다. 불공정거래의 소지가 다분하다. 경영혁신, 구조조정 등의 자구노력은 등한시한 채 은행이 자기 몫부터  챙기게 되면 합리적 금리 결정은 무망한 기대에 불과하다. 판매자 시장(seller’s market)에서 소비자는 속수무책이 된다. 푸대접과 무대접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 금융소비자는 소비자도 아니다. 중세시대의 예금주만도 못하다는 지적이다. 당시 예금자들은 환전상에게 돈을 맡기고 대신 보관증서를 받았다. 간혹 증서를 제시해도 돈이 없어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럴 때 화가 난 예금주들은 탁자를 부수며 난동을 피웠다. 바로 그 부서진 탁자(bankorotto)에서 ‘파산(bankrupcy)’의 용어가 탄생했다. 한국 금융소비자들은 그런 항의조차 못하는 딱한 처지에 있다.

한국 경제가 어렵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성장잠재력이 급전직하다.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반도체 호황도 저무는 기색이다. 대체할 마땅한 먹거리가 안 보인다. 주력 산업은 후발 개도국들의 추격에 따라잡혀 경쟁력을 잃고 있다. 새로운 미래 산업의 발굴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생명과학 등과 같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도 중국에 뒤처진다는 비보가 잇따른다.

국내 은행들도 지금처럼 살 수는 없다. 언제까지 비좁은 내수 시장에서 정부 보호나 받으며 예대마진으로 연명하기 어렵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 한창인데 은행들만 두문불출 안방사수는 곤란하다. 시대착오적 행태다. 작금의 위기 국면은 금융산업이 한국경제의 첨병으로 나설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그럴만한 능력도 충분하다. 최우수 인적자원이 금융권에 쏠려있다. 전대미문의 흑자시현으로 자본력도 탄탄하다. 금융 기법이나 노하우 역시 그 정도면 쓸 만하다. 국가의 장래를 책임질 신성장 산업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의지와 결단만 남아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금융산업이 국내외에서 발군의 기량을 뽐낼 그 날이 언제쯤일까 기다려진다. 국민들도 한마음일 것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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