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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한민국이 위태하다
아, 대한민국이 위태하다
  • 이도선
  • 승인 2018.10.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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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선 칼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달 몹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3번째 평양 방문을 마치기 무섭게 뉴욕으로 날아가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유엔사무총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등을 만났다. 유엔총회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연설도 하고 언론 인터뷰도 했다. 촌각을 다투는 대통령이 이리 바삐 다녔으면 국익에 크게 보탬이 되고 국격도 한층 높아졌으리라.

하지만 달리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최우선 방북 목표는 북한 비핵화이거늘 평양에서는 한반도 비핵화만 외치다 왔다. 비핵화는 오로지 북한 몫이다. 왜 핵무기가 없는 남한까지 싸잡아 비핵화 들러리로 세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4.27 판문점 선언에선 한반도 비핵화가 군사적 긴장 완화 분야의 세부 항목이었으나 9.19 평양 선언에는 버젓한 별도 분야로 격상됐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주장이다. 속없이 사용했다간 비핵화 압력에 맞서 미국의 전략자산을 걸고넘어지려는 북한의 농간에 말려들기 십상이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문 대통령도 뉴욕에선 북한 비핵화로 말을 슬쩍 바꿨다.

평양 능라도 5·1경기장과 대동강수산물식당 방문도 예사롭지 않다. 5·1경기장에서는 북한 주민 15만 명이 참가한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하고 연설까지 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대중 연설을 한 첫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좋아할 일은 못 된다. 주지하다시피 집단체조는 체제 선전을 위해 주민들 인권을 무자비하게 짓밟아 가며 만든 ‘노예 공연’이다.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빛나는 조국’의 전신인 ‘아리랑’을 보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도 그래서다.

당시 국무장관 전용기에 동승한 유일한 한국 기자로 북한 땅을 밟았던 필자는 올브라이트 장관이 집단체조 관람 도중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불과 10여m 거리에서 지켜봤다. 나중에 들으니 미사일이 실물처럼 날아가는 카드섹션 장면을 가리키며 “마지막 발사 시험”이라고 다짐하는 내용이었으나 그마저 결국 공수표로 판명 났다. 필자는 다시 국무장관 전용기편으로 서울을 거쳐 워싱턴으로 귀임하는 내내 집단체조의 야만성에 대한 미국 관리와 기자들의 성토를 죄 지은 듯 묵묵히 들어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의 체제 선전에 이용당한 것은 대동강식당 방문도 매한가지다. 이른바 ‘최고 존엄’의 행차가 철저한 사전 각본에 따라 진행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짐짓 모른 체 하고 “음식이 맛있습니까? 우리도 맛 한번 보러 왔습니다”라며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자연스레 대화하는 할리우드 연기를 선보였다.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가 이 장면을 일반 평양시민의 일상으로 오인했을 공산이 크다.

평양 선언 부속서로 채택된 군사 분야 합의서도 문제다. 완충지대 설정, 대규모 군사 훈련 중지,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철수 등 겉으로 보기엔 공평한 군축 같지만 실상은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고 북한군 감시와 타격을 어렵게 만든 우리만의 일방적 무장 해제에 다름 아니다. 국가 안보가 위태하다는 군사 전문가들의 우려에는 콧방귀도 안 뀌고 외려 북한이 양보했다고 우기니 기가 찰 따름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속임수나 시간끌기에 미국이 보복하면 감당할 수 없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대단한 전리품인 양 내세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겐 “이번만큼은 북한을 믿어 달라”고 읍소했고 유엔총회에선 “이제 국제사회가 북한에 화답할 차례”라고 했다. 도대체 북한이 뭘 했기에 화답하고 말고 한단 말인가. 북한 최고지도자의 식언은 한두 번도 아니고 이번은 절대 아니란 보장도 없다. 김 위원장의 발언에 진정성이 있다면 핵무기 목록과 폐기 일정부터 내놔야 한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한 입장을 잘 전달하려는 선의이겠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신뢰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란 미국 언론의 비아냥까지 나왔겠는가.

대한민국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다. 남북 합동 위장 평화 쇼로 국민의 눈을 가리는 일에 정치권과 언론계, 학계, 문화계가 온통 한통속이니 북쪽의 독재자가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는 건 시간문제라고 여겨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민이 위기의식을 못 느끼니 큰일이다. 어떻게 일으킨 나라인데 이리도 쉽게 무너진단 말인가. 더 이상 머뭇댈 여유가 없다. 온 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나라를 살려낼 방도를 진지하게 강구할 때다. 중구난방 떠들며 우왕좌왕할 게 아니라 차분하고 체계적으로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이도선 ( yds29100@gmail.com )

언론인,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전)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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