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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마와 동물원
퓨마와 동물원
  • 임종건
  • 승인 2018.10.0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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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칼럼] 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가던 지난 9월18일 오후 5시쯤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암컷 퓨마 한 마리가 우리를 탈출했습니다. 이 퓨마는 한 번 마취 총에 맞았으나 마취 효과가 없이 도망쳐 숨어 있다가, 동물원 측이 인명피해를 우려해 사살 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밤 9시45분께 동물원 안에서 엽사에 발견돼 사살됐습니다.

이 소식은 이날 있었던 남북정상의 만남을 젖혀놓고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탈출 직후부터 폭발하기 시작한 네티즌들의 관심은 마취 총을 맞아 생포될 것 같다는 소식에 안도하다가, 사살 소식에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 전원구조 오보에 안도했다가 참혹한 결과에 분노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SNS의 반응은 죽은 퓨마에 대한 동정과 사살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생애 첫 외출이 죽음이라니’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날 한 포털에서 남북정상회담 기사와 관련해 가장 많이 달린 댓글이 3,000여 건이었던 것에 비해 퓨마 댓글은 1만2,000건에 이르렀습니다. 검색어 순위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이 7만 번 검색되는 동안 퓨마 검색은 36만 5,000번이 넘었습니다.

사태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정부 반응도 예민해졌습니다. 퓨마 포획작전에 경찰, 소방관, 군부대까지 동원됐고, 이례적으로 북한 핵실험 같은 대형 재난 때나 가동되는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작전을 지휘했습니다.

퓨마 사살명령이 NSC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대전시 관계자의 말이 전해지자 청와대는 “그런 일은 없었다. 현장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이낙연 총리도 페이스북에 “생포하길 바랐지만 현장 판단은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깝고, 송구스럽습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19일에도 퓨마에 관한 관심은 이어져 댓글의 수가 TV들이 공동생중계하던 남북공동선언 뉴스를 능가했습니다. 주장도 과격해져 동물원을 폐쇄하라는 댓글이 쇄도했습니다. 그 다음 날엔 동물원 측이 퓨마를 박제해서 영구 보전하겠다고 하자, 억울하게 죽은 퓨마를 영구 보전한다는 것은 잔인하고 이기적인 발상이라며 흙으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동물원 측은 결국 퓨마를 화장키로 했습니다.

필자도 사살 소식을 접하며 마취 총을 제대로 맞히기는 했는지, 마취약의 약효는 검증이 된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살명령을 내리기보다 한 번 더 마취 총을 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탈출 후 사람을 피해 도망 다닌 퓨마였고, 사육된 상태였던 것을 감안하면 인명에 위해를 가하리라는 판단은 성급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만에 하나 인명 피해가 발생했더라면 사회적인 파장은 더 컸을 것입니다. 사살에 대한 비난은 사살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으로 뒤바뀌었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사살에 대한 지나친 비난은 균형감 있는 주장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동물원폐쇄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상태에서 살아야 할 동물들을 우리에 가둔 채 인간의 눈요기로 이용하는 것이 동물에 대한 학대라는 동물보호론자들의 주장은 원론적으로 수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학대는 인간의 탐욕을 위해 산 곰의 쓸개즙을 뽑아내는 행위 따위에 더 해당된다고 봅니다.

정상적인 동물원은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들의 생활환경을 나름으로 자연상태를 유지하도록 과학적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영리목적의 동물원이라고 해도 영리의 상당 부분은 동물의 복지에 우선적으로 투자되는 구조로 되어 있을 것입니다.

동물원은 생태계의 파괴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동물들에게 안식처가 될 수 있고, 멸종돼 가는 동물들에게는 종족 보존의 터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동물원은 인간, 특히 어린이들이 동물과 접하는 공간입니다. 책에서, 영화에서 본 동물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은 인간이 동물을 이해하고 동물과 교감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지언정 해가 되는 일은 아닙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데리고 동물원을 찾는 이유일 것입니다.

어느 동물원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 우리에 거울이 놓여 있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만, 퓨마사건은 인간이 자연계에서 여전히 ‘가장 무서운 동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퓨마 사건이 동물원들로 하여금 관리를 보다 철저히 해서 더 이상 ‘동물원 폐쇄’ 주장이 나오지 않게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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