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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제조업, 현실 못 따라가는 창업정책
늙어가는 제조업, 현실 못 따라가는 창업정책
  • 권의종
  • 승인 2018.08.2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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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못지않은 해악, 분배 악화... 똑같이 대우받고 다 같이 잘사는 게 한국경제의 미래 좌표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제조업이 늙어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제조업 신생기업의 성장동력 역할 감소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가 전하는 메시지다. 한국 경제에 활력소가 되어야 할 창업 제조기업의 성장 동력이 줄고 있다는 스토리다. 종사자 수 10인 이상 기업 중 업력 5년 이하의 신생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8%로서 1995년 51%에 비해 격감했다.

제조업 총생산성 증가에서 신생기업이 차지하는 기여도 역시 내리막이다. 1995~2000년 3.8%에서 2000~2005년과 2006~2010년에 각각 2.6%로 감소했다. 2010~2013년에는 1.5%까지 떨어졌다. 제조업의 전체 총생산성 증가율도 1995~2000년 7.3%에서 2010~2013년 3.1%로 급감 추세다. 신생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하락하면서 경제 성장동력으로서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IT) 등 첨단기술 제조업 분야에서 신생기업의 역할 감소는 더 큰 걱정이다. 첨단기술 제조업에서 신생기업의 생산성 증가 기여도는 1995~2000년 1.3%에서 2010~2015년 0.2%로 뚝 떨어졌다.
  
8쪽 분량의 작은 보고서가 전하는 함의는 작지 않다. 정부의 창업정책 개선의 당위성을 일깨우는 경종(警鐘)으로 울린다. 창업의 정의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개혁의 시그널로 읽혀진다. 업력과 창업자 나이를 기준으로 창업기업을 정의하는 지금의 방식은 다분히 행정 편의적이다. 정부와 국민적 관심이 온통 스타트업, 창업기업에 쏠려있는 현실에서 ‘경제의 허리’ 격인 중소·중견기업은 정부지원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제구실 못하는 창업정책... 중기업이 울고 있다... “동냥은 못할망정 쪽박까지 깨서야”

중기업이 울고 있다. 설립 후 5년을 넘기거나 창업자 나이가 39세를 넘으면 아예 대기업 취급이다. 업력이 늘어나면 사업 기반이 저절로 다져지는 줄 안다. 창업한지 어느 정도 햇수가 되었으니 이제는 자력으로 살아가라는 정책 취지는 성급하고 무심하다. 창업기업의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금융, 조세, 정부보조 등 각종 지원이 끊기는 현실이 야속할 정도다.

받은 혜택마저 반납을 요구받기 일쑤다. 과거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야 되고 기존 대출도 상환해야 한다. 기업 성장주기(business life cycle) 상으로 창업기를 지나 성장기에 이르면 매출이 커지면서 소요 자금도 늘어나게 마련인데 그걸 몰라준다. 지원을 더는 못해줄망정 이미 받은 것까지 도로 내놓으라는 성화다.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까지 깨려는 기세다. 정책이 현실을 못 따라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나이만 어리다고 젊은이가 아니라 젊게 살아야 청년이다. 하물며 수명이 있을 리 없는 계속기업(going concern)에서 업력이나 경영자 나이로 창업의 범주를 결정하는 접근방법은 억지 논리에 가깝다. 업력이 지긋해도 신제품 개발, 사업다각화, 비즈니스 모델 혁신 등으로 체질을 새롭게 하는 기업이 진정한 창업기업일 수 있다. 형식의 가위로 창업의 범위를 재단하는 것만큼 위험한 행동도 없어 보인다.

업력이 중소기업 범주를 넘었다고 정부지원이 즉각 끊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소기업으로 계속 남기위해 업체를 신설하는 ‘피터팬 증후군’도 생겨서는 안 된다. 창업지원을 받기 위해 기업을 새로 만들어 기존 기업의 매출을 쪼개는 편법도 등장해서는 곤란하다. 기업의 실상을 파악하기에 앞서 ‘설립일이 언제냐?’부터 캐묻는 정부기관의 어이없는 행태도 사라져야 마땅하다.

체질 새롭게 하는 게 진정한 창업... “혁신기업은 있어도 혁신업종은 있을 수 없어”

창업정책의 초점은 기업이 창업하고 난 뒤 성장과 혁신 창출이 가능한 단계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창업만 했다고 저절로 성장하는 게 아니다. 나무도 심은 뒤에 갖은 정성을 다해 가꿔야 제대로 커 갈수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성장기에 충분한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생육과 번성이 가능해진다. 규모가 커질수록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곳이 기업이다.

재원 한정이 편중 지원의 구실이 될 수 없다. 균형적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도 지원은 골고루 이뤄지는 게 맞다. 모든 기업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창업기업의 수가 아니라, 성장동력을 견인할만한 활력 있는 기업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기술집약도가 높고 첨단기술을 보유한 혁신기업이 늘고 이들의 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

혁신성장, 신성장동력 산업을 정부가 선정하는 형식 또한 재고의 여지가 크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계 제로의 경제 환경에서 정부가 성장업종을 지정하는 행동 자체가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잘못했다간 자원배분만 왜곡시키기 십상이다. 산업에도 ‘반상(班常)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성장업종 지정 산업에서도 실패기업이 나오기 마련이고, 전통산업에서도 성공사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혁신업종을 영위한다고 혁신기업이 아니다. 혁신 경영을 펼쳐야 진정한 혁신기업이 될 수 있다. 혁신기업은 있을지언정 혁신업종은 존재할 수 없는 이유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작은 기업이나 큰 기업, 신생기업이나 기존기업, 혁신기업이나 전통기업 모두가 주요한 경제주체들이다. 중요도 면에서 차이가 있을 리 없다. 어느 하나 없어서도 소외돼서도 안 되는 한솥밥 먹는 식구들이다. 특정 부문에만 혜택을 주고 다른 부문은 소외시키는 누는 범하면 안 된다. 저성장 못지않은 해악이 분배 악화다. 똑같이 대우받고 다 같이 잘 사는 게 한국경제의 미래 좌표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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