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22:40 (금)
‘폼페이 최후의 날’? 공정위의 때 아닌 ‘엑소더스’
‘폼페이 최후의 날’? 공정위의 때 아닌 ‘엑소더스’
  • 박미연 기자
  • 승인 2018.08.21 19:44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취업 비리로 따가운 국민여론..100명 가까이 전출 희망원 내는 등 탈출러시

[금융소비자뉴스 박미연 기자] 출애굽기(Exodus)는 BC 3세기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지도로 이집트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된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출된 것과 안전하게 갈대 바다(전통적으로 홍해로 잘못 알려짐)를 건넌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

공정위가 그동안 '고시출신 2억 5000만원, 비고시 출신 1억 5000만원'으로 연봉까지 정해서 퇴직자들을 기업에 떠넘겼던 사실이 드러났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0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취업비리를 시인하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한 것이다. 쇄신안에는 퇴직자들의 재취업 관여를 전면 금지하고, 재취업 이력을 10년간 홈페이지에 공시한다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공정위 동향이 이상하다. 최근 공정위에서 다른 중앙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로 전출을 희망한다며 신청서를 제출한 공정위 직원은 100명에 육박한다. 인사혁신처는 ‘나라일터’라는 사이트를 통해 수시로 공무원 인사 교류를 하고 있다. 고위공무원이 아닌 4∼9급 중앙·지방공무원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신청자 중 직급, 희망 부처 등의 조건이 맞으면 교류가 성사된다.

지난달 검찰의 공정위 재취업 비리 수사 착수 전까지 나라일터에서 공정위는 인기 부처였다. 전입을 희망하는 공무원이 넘쳐났다. 공정위를 떠나겠다는 직원은 드물었다. 하지만 최근 공정위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공정위 일부 보직 과장들도 인사 교류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본부 인원이 50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5명 중 1명은 탈출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 ‘공정경제’의 핵심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휘청거리는 꼴이다. 전직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잇따라 구속된 데 이어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직원들이 무더기로 ‘엑소더스(탈출)’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공정위에서 다른 부처로 전출을 신청한 직원이 100명 숫자는 본부 직원 500여명 중 무려 20%에 이른다. 과거에 없던 일이다. 그러다보니 기업의 '저승사자' 소리를 들으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퇴직자리가 보장될 때는 꼼짝 않다가 특권이 사라지자 탈출을 시도한다는 호된 비판마저 나온다.

김 위원장이 검찰의 ‘공정위 재취업 비리’ 수사 후속 조치 일환으로 조직 쇄신 방안을 내놨지만 ‘재탕’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까지도 나온다. 로비스트 규정은 퇴직자 간 접촉을 차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 비리 때문에 엉뚱하게 피해를 보는 공정위 젊은 직원들에 대한 사기진작책도 없다.

김 위원장은 21일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기업은 검찰이 수사하지 못한다는, 큰 특권 하나를 내려놓은 것이다. 그런데도 박수를 받기는 커녕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썰렁하다.

전속고발권의 전면 폐지를 주장해온 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전속고발권의 일부 폐지는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담합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전속고발권이 유지되는 한, 대기업과 공정위 공무원의 유착은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 현재 경성담합에 대해서만 전속고발제 폐지를 한다는 것은 거꾸로 공정위의 나머지 권한이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형사처벌은 기본적으로 검찰이 판단할 문제이다. 행정기관의 소관이 아니다.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로 축소시키면서, 대기업이나 공정위가 또다시 이득을 취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이 적지 않다. 김상조 위원장의 결단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공정위가 자신의 ‘밥그릇’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개혁의 시늉만 내는 것처럼 비쳐지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개혁대상이 된 공정위의 취업비리 같은 불공정성이 아니라 내부분위기가 아직도 진정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실세 장관’으로서 바람막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검찰에 무릎을 꿇었다는 자조적인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처럼 공정위가 흔들리면서 경제민주화 정책 추진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도 문제다.

성경의 엑소더스는 원래 영광의 탈출을 뜻한다. 그러나 지금 공정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출러시는 흡사 서기 79년 로마제국 시절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아비규환 속에서 저마다 살기 위해서 탈출하려는 폼페이 최후의 날을 연상케 한다. 공정위 주변에서는 내부로부터 진정한 반성을 하기 보다는 전속고발권 폐지 갈등과 함께 촉발된 검찰 수사의 의도성을 놓고 여전히 비판 여론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들이 국민에 봉사하는 공복(公僕)이 아니라 특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인기기사
뉴스속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금융소비자뉴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여의도동, 삼도빌딩) , 1001호
  • 대표전화 : 02-761-5077
  • 팩스 : 02-761-5088
  • 명칭 : (주)금소뉴스
  • 등록번호 : 서울 아 01995
  • 등록일 : 2012-03-05
  • 발행일 : 2012-05-21
  • 발행인·편집인 : 정종석
  • 편집국장 : 백종국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윤정
  • 금융소비자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금융소비자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fc2023@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