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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삼성증권, 한국금융사 마지막 '비운의 주인공'이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삼성증권, 한국금융사 마지막 '비운의 주인공'이어야
  • 권의종
  • 승인 2018.04.1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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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곳만 잘했어도 안 생겼을 일.. 전화위복 계기 삼아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무너진 자존심 되살릴 때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금융산업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은행권 채용비리, 금융감독원장 임명 논란의 와중에서 삼성증권 전산오류의 악재가 터졌다. 우리사주 조합원에게 존재할 수 없는 주식을 배당한 게 발단이었다. 주당 1천원 대신 1천주를 배당, 28억3천만주가 직원 계좌에 잘못 입고되었다. 배당받은 직원 중 일부는 501만2천주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 유령 주식이 시스템 상에서 거래되는 초유의 사고였다. 주가는 폭락했고 혼란은 극심했다. 후폭풍은 아직도 거세다.

사태의 전말은 미스터리 투성이다. 삼성증권이 해당 주식을 보유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우리사주 개인계좌로 주식 배당이 이루어졌는지 당장 이해가 어렵다. 발행주식수가 8,930만주인데 28억주가 배당되었다. 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증권사의 클릭 몇 번으로 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허위 주식을 만들어 얼마든지 시장에 팔 수 있는 실무상 허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 중 일부 물량이 곧 바로 장내에서 매매가 체결된 사실은 더더욱 충격이다. 500만주가 넘는 주식이 시장에서 거래되면서 법적으로 금지된 무차입 공매도(Naked Short Sale)가 성립하는 형식이 되었다. 무차입 공매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주가하락 등 변동성을 키운다는 지적에 따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서 원칙적으로 금지한 거래방식이다.

내부 통제와 관리시스템 또한 상식 밖 수준이었다. 미발행 주식이 계좌에 입고되는 황당한 실수에도 경고의 메시지 하나 없었다. 주식배당을 잘못 입력한 직원의 실수를 담당팀장이 확인도 없이 승인했다. 그러고도 그 사실이 다음 날 오전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오류를 파악하고 주문을 차단하기까지 걸린 시간도 37분이나 되었다. 사고는 예고된 바였고, 대응도 한없이 느려 터졌다.

사태 전말은 미스터리 투성이.. ‘예고된 사고, 대응 또한 느려 터져’

도덕적 해이는 더욱 가관이다. 실수로 입고된 엄청난 물량의 주식을 팔아치운 직원이 무려 16명에 달했다. 그중에는 부서장급과 애널리스트도 있었다. 일부 직원은 매도하지 말라는 수차례의 경고에도 많게는 100만주를 팔아치웠다. ‘직원계좌 매도금지’의 팝업창이 5분 간격으로 두 차례나 떴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이게 웬 떡이냐, 얼씨구나’ 반색하며 현금화를 서둘렀다. 돈에 눈이 멀어도 유분수지, 절도, 배임, 횡령의 소지가 큰 비리를 겁도 없이 저질렀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회사 임직원의 행동으로는 상상조차 힘든 만행이었다.

뒷북만 치는 관리감독기관의 행태도 면피의 여지가 없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사전 점검과 업무처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감독기구의 직무태만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 꼭 일이 터지고 나서야 부산을 떨곤 한다.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 구태다. 특별점검에 착수, 업무시스템과 함께 내부통제 문제를 확인해 위법사항이 발견되면 엄중 조치하겠다는 판에 박힌 으름장이 매번 되풀이된다.

다른 증권사들에 대해서도 증권계좌 관리 실태를 점검, 유사사례 발생을 막겠다는 발표 또한 반복적이다.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을 반장으로 ‘매매제도 개선반'을 구성, 주식관리 절차 전반을 재점검하고 제도개선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미덥지 않다. 시답잖게 들릴 뿐이다. 2013년 한맥증권 파산 등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발표 내용이 별반 달라지는 게 없다. ’재탕‘, ’삼탕‘이다.

미덥지 않은 감독기관 대책.. 금융사고 때마다 달라진 게 없는 ‘재탕’

사태가 수습된 과정도 석연치 않다. 무차입 공매도 사태가 벌어진 날 삼성증권은 시장에 팔린 주식을 다시 사 모아야 했다. 500만 주나 되는 주식을 사게 되면 주가는 당연히 폭등할 수 밖에 없었다. 비싸게 사야하는 삼성증권으로서는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보인 국민연금의 태도가 뜬금없다. 갑자기 80만 주를 매도해 주가 폭등을 막았다.

결과적으로 삼성증권은 엄청난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국민들 노후자금으로 증권사의 손해를 보전해주었다는 오해가 생길만 하다. 어쨌든 삼성증권은 시중에 풀린 500여만주 중 260만주는 매수하고 241만주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로부터 빌려 가까스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사태 발생을 삼성증권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허술한 업무시스템, 무능한 관리감독 체계,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합작품이나 진배없다. 어느 한 곳에서 만이라도 제대로 역할을 했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었다. 엄청난 분노가 당연하고 추상같은 처벌이 마땅하다.

하지만 사태 수습에도 순서가 있다. 완급(緩急)조절이 중요하다. 서둘러야 할 일이 있는가 하면 나중에 해도 될 일이 있다. 현 시점에서 시급한 건 성급한 처벌보다 확실한 회복이다. 징계는 사태를 수습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유연함이 나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중한 대응이 성급한 질책보다 더 무섭다. 그나마 이 정도에서 피해가 그칠 수 있었던 걸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는 긍정적 사고가 도리어 긴요하다.

총체적 난국에는 전체적 대응이 효과적이다. 내 탓 네 탓 따지기보다 공동의 탓으로 돌리고 함께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현재로서는 더 좋은 방책이 없다. 증권회사와 감독기관이 숭숭 뚫린 시스템의 구멍을 메우고, 임직원의 풀어진 양심의 실밥을 서둘러 손질해야 한다. 흔한 말로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그래야 삼성증권이 한국금융사의 마지막 비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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