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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칼럼] ‘희망의 메시지’는 난무하지만
[허영섭 칼럼] ‘희망의 메시지’는 난무하지만
  • 허영섭
  • 승인 2018.01.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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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칼럼] 새해를 맞아 희망의 메시지가 난무하고 있지만 현실은 차갑고 우울하다.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탈출구조차 찾기가 쉽지 않은 게 지금 모습이다. 시일이 지난다고 상황이 더 나아지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에선 온갖 메시지와 슬로건이 공허해지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갈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분노하는 이유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이며, 세월이 바뀌었어도 요지부동인 후진적 정치 구조에 대한 환멸이다.

요즘 나라가 돌아가는 모습이 그러하다. 부동산투기 단속에서부터 가상화폐 처리, 유치원 영어교육 혼선에 이르기까지 미더운 게 거의 없다. 오히려 손을 댈수록 강남 아파트값이 자꾸 뛰어오르고 있으며, 근로자 소득을 늘리겠다고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으나 경비원들은 해고되고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줄어드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정책 책임자들이 최저임금 홍보를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가 종업원에게 “시장 사정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는 얘기까지 들어야 했을까.

일자리 창출 문제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기업활동을 북돋우면서 걸림돌을 걷어내준다면 어련히들 알아서 신규 투자를 늘리고 직원들을 새로 뽑으련만 지금의 정책 방향은 정반대다. 노조의 권익도 위해야겠지만 노조일변도 정책을 펴서는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청년백수’로 지내야 하는 당사자들의 좌절감만 커지고 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했다고 해도 남의 일처럼 여겨지는 까닭이다.

안전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심각하다. 사고가 터졌다 하면 대형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판국이다. 이번 밀양 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서른여덟 명이 희생되고 150여 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한 달 전에도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나 애꿎은 생명들이 사라져갔다. 인천 낚싯배 전복사고나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타워크레인 붕괴사고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이웃들이 속절없이 목숨을 잃고 우리 곁을 떠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집단 우울증에 무기력 증세까지 번져가고 있다.

정부의 기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데서부터 구멍이 뚫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세월호 침몰사고의 쓰라린 기억이 아직도 뚜렷이 새겨져 있는 상황이다. 그 사고의 유산을 물려받고 새 정권이 탄생한 것이지만 현실은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꽃봉오리를 미처 펴지도 못한 채 차가운 바닷물 속에 스러져간 어린 영혼들과의 약속이 기껏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인가. 거리를 메웠던 노란 리본의 기억이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것도 이상하다.  현장 대응이 서툴렀다는 이유로 소방대원들에 대해 징계조치가 내려진 게 고작이다. 징계 받을 사유가 있는데도 징계를 미룰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 대원들을 징계한다고 모든 책임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나 행정적인 업무지원에 있어 미흡한 부분은 없었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안전에 만전을 기하라”는 몇 마디 지시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국가 정책이 일방적인 명령이나 지시로만 이뤄질 수는 없다. 의욕이 중요하지만 의욕이 넘친다고 현안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난 정부에서 지적됐던 사안들이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현실적인 실행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권한에 따른 책임 의식이 모자란 것도 마찬가지다. “과거 정부와 집권당이 탐욕스러웠다면 지금 정부와 집권당은 무능하다”는 항간의 평가가 왜 나오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적폐 수사’를 통해 지난 정부 지도자들의 부끄러운 행적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지만 시일이 지나 뒤돌아본다면 지금 정부도 박수 받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정부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민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자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마다 내건 여러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도리어 정부가 새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그 설익음으로 혼란을 겪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한 게 사실이다. 나라가 국민들 걱정하기보다 국민들의 나라 걱정이 더 크다면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국민들이 아예 나라 걱정을 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 시절이 올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어제 유족들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첫 영결식을 치른 밀양화재 희생자들의 사례가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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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gracias1234@edaily.co.kr)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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