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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과거를 잊으면 미래는 오지 않는다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과거를 잊으면 미래는 오지 않는다
  • 권의종
  • 승인 2017.11.1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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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장 부임 후 선심성 사업도 문제지만, 전임자의 사업을 무작정 없애는 건 더 큰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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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우리만큼 아쉬움의 정서가 많은 국민도 없을 듯싶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일에 대해 미련을 쉽게 떨치지 못하곤 한다. 못내 아쉬워하고 지나칠 정도로 안타까이 여기는 때가 많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제대로 뒷받침만 해주었더라면 지금보다 편안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작년 말에 샀던 주식을 안 팔고 그대로 갖고만 있었어도 최소한 2배는 벌었을 텐데.” “수능 점수가 몇 점만 더 올랐어도 일류 대학, 희망 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를 평생 가슴에 담고 사는 이름하여 ‘텐데 문화병’ 환자들이 적지 않다.

물론 추억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기뻤던 일은 기뻤던 대로, 힘들었던 일은 힘들었던 대로 생각만 해도 엔도르핀이 펄펄 넘친다. 어느새 마음은 동심으로 그 옛날을 내달린다. 모여 얘기라도 나누노라면 시간가는 줄도 날이 새는 줄도 모른다. 초겨울처럼 삭막한 현대인의 삶에 이만한 활력소가 또 어디 있을까.

다정도 병인 양, 추억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그만큼 현실 인식을 어렵게 한다. 부모가 고등교육을 시키지 않았던 사실을 불만족 현실의 시작으로 해석하도록 부추긴다. 실패한 주식투자를 빈한한 살림살이 탓으로 돌리게 한다. 그런가 하면, 기대만큼 안 나온 수능결과 때문에 마음에 없는 대학에 다니게 된 사실을 후회하게 만든다. 이쯤 되면, 과거는 부정과 원망, 그리고 탄식의 대상일 뿐이다.

알고 보면 과거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자신의 삶과 체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다. 오늘을 있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잘만 활용하면 미래 설계를 위해서도 얼마든지 든든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이토록 값진 과거 속의 가치들이 텐데문화 증후군으로 옥석구분 없이 버려진다면 평생의 손실임에 틀림없다.

값진 과거 속의 가치들이 옥석구분 없이 버려진다면, 평생의 손실

과거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가치를 창출해내기도 한다. 이탈리아 피렌체가 그 예이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이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어로 'Rinascimento'로 원래는 ‘재생’의 의미이나, 15, 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생한 문화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되었다. 지금도 이 도시에는 근대적인 빌딩을 찾아보기 어렵다. 16세기 이후 시간이 멈춰 버린 모습으로, 거리 전체가 말 그대로 중세 미술관이다.

겨울은 난방이 잘 안되어 얼어붙은 듯이 춥고, 여름은 바람이 통하지 않아 찜통처럼 덥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시사철 세계 각 국에서 문화예술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도시를 찾는 사람들은 정오를 알리는 사원의 종소리에도 감동하고, 두오모 성당의 몇 백 계단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면서도 힘들어하지 않는다. 심지어 쿠폴라에서 날아오르는 비둘기 떼에도 방문자들은 탄성을 연발한다. 중세의 분위기가 연출해내는 가치 때문이다.

과거부정 증상의 창궐은 금융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금융현실은 바꾸기 일색이다. 잘 운영되어왔던 제도나 사업은 물론, 전략과 관행 등이 일거에 폐기처분되기 일쑤다. 같은 금융회사 내에서도 해가 바뀌거나 경영진만 교체되어도 으레 제도나 관행들이 일순 뒤집히곤 한다. 전임자들의 경영방식이나 관리스타일은 일단 버리고 보는 게 후임자의 ‘당연한 책무’로 이해하는 경영자들마저 적지 않다.

비유로 설명하면 실감이 더한다. 수출입은행의 ‘히든 챔피언’ 사업이 그렇다. 히든 챔피언은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이 큰 글로벌 중소·중견기업을 발굴해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지난 2009년 취임한 당시 은행장의 역점 사업이다. 독일의 히든챔피언 개념을 차용해 한국형 강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사업이 출시되자마자 최고의 금융지원 제도로 인기가 치솟았다. 이에 뒤질세라 다른 금융회사들도 너도나도 앞 다퉈 벤치마킹에 나서 유망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 사업이 러시를 이룰 정도였다.

전임자가 만들고 후임자가 없애면, 역사는 멈춘다

사업이 개시된 이후 3년간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되는 업체수가 폭증했다. 그러나 성장은 거기까지였다. 2012년 이후 선정 실적이 감소세로 돌아섰고 2013년과 2014년에는 각각 55개, 33개 기업이 선정되는 데 그쳤다. 2015년과 2017년 들어서는 아예 선정된 기업이 전무했고, 2016년에 단 4개 기업만 뽑힌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를 만든 은행장이 떠나면서 관심이 시들해졌고 2014년 모뉴엘 대출사기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업이 작동을 멈추었다.

설상가상으로 금년도 국정감사에서 전(前) 대통령이 실(實)소유주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다스에 히든챔피언 후보기업 선정과 특혜 대출지원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사업은 고사 상태에 이르렀다. 기관장이 부임할 때마다 본인 업적을 쌓기 위해 선심성 사업을 새로 벌이는 것도 문제지만, 전임자가 만든 제도나 사업을 후임자가 무작정 없애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시간과 인적·물적 자원의 낭비와 비효율만 초래할 뿐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새로운 제도나 사업 일변도의 접근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미 시행되었던 사업 중에서 쓸 만한 것을 골라 되살리는 ‘리사이클링’ 방식에도 분명 장점이 있다. 남이 해놓은 것은 버리고 내 것만 쫒는 경영은 최강만이 살아남는 작금의 경영환경에서 통할 리 없다. 갈팡질팡 과정에서 체화된 고유한 노하우나 강점은 생길 수도 지속되기도 힘들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悔)은 그 속성상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것이 한탄으로 이어지면 회한(悔恨)이 되고, 개선 쪽으로 결실되면 회개(悔改)로 변한다. 출발은 같으나 결과는 판이해진다. 회개된 과거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발하는 전통이 되고 역사가 된다. 모름지기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되며, 일단 잊으면 될 일도 안 된다. 전임자가 만들고 후임자가 없애면 역사는 멈춘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경영학박사/ 중소기업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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