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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은 혁신경제의 발판
소득주도성장은 혁신경제의 발판
  • 조영철
  • 승인 2017.11.1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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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철 칼럼] 소득주도성장은 케인스주의 수요 확대 정책이어서 단기 경제 활성화 효과는 있지만, 성장잠재력을 근본적으로 올리지는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경제 침체 원인 중 하나가 총수요 부족이기 때문에 소득주도성장이 총수요 확대를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게 소득주도성장의 전부는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은 양극화와 불평등을 악화시켜 온 기존의 성장론으로는 더 이상 국민 삶의 질 개선은 물론이고 성장 자체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경제학에서 성장은 자본, 노동, 기술혁신 3가지 요소가 결정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낙수효과를 강조한 기존 성장정책은 주로 자본과 기술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차별·저임금·장시간 노동, 한국경제의 걸림돌

저축 규모가 투자를 크게 앞서고 대기업의 유보이윤이 남아돌아 자사주 잔치로 외국인 주주의 배만 불려주는 현실이기에 법인세 인하 같은 자본 인센티브 정책은 이제 별 효과가 없다. 한국경제의 성장 병목은 OECD 최악의 자살률과 출산율에서 보듯이 비정규직 차별,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피로에 지친 노동이다.

혁신은 사람이 하는 거다. 고용·소득 불안정에 시달리고 장시간 노동으로 피로에 찌들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할 정도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첨단 기술혁신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는가? 생산현장의 품질·공정 개선 같은 소박한 혁신도 생각할 여유가 있고 회사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있을 때 나오는 것이다. 이건 경제이론이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한국은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세계 1위다. 그동안 기술혁신을 위해서 돈을 쏟아 부었지만 성과가 신통치 않은 것도 혁신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은 포스트 케인지언의 현학적 경제이론이 아니라 “헬조선”을 방치하면 혁신도 성장도 안 된다는 상식에 기초한 것이다.

공공부문, 재벌 대기업같이 노조의 보호를 받는 10%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내 자식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질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대학 입시 통과 경쟁에 도움을 줄 뿐 학생의 진정한 학습역량 향상과 무관한, 아니 오히려 저해하는 사교육 경쟁에 우리는 매년 수십조 원을 낭비하고 있다.

한국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수준을 기록한 지 오래되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만 해도 법대, 경영대, 의대에는 여학생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남녀 반반이다. 이처럼 남녀 간 인적자본 격차가 없기에 27~29세 연령의 남녀 간 임금격차는 거의 없다. 그런데 30세 이후 여성의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발생하면서 여성 취업률이 뚝 떨어지고 남녀 간 임금격차가 확대되기 시작해 전체 남녀 간 임금격차는 OECD 1위다. OECD 경쟁국들은 일·가정 양립정책과 복지 확충으로 여성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는 엄청난 교육 투자를 해놓고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사회 낭비를 하고 있다. 저출산에 의한 연령별 인구감소로 지금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2023~5년이 되면 한국도 일본처럼 노동력 부족이 본격화한다. 그 전에 일·가정 양립 정책이 완전히 뿌리를 내려 복지선진국처럼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만일 그러지 못한다면 한국경제는 심각한 잠재성장률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혁신과 성장은 노동 존중과 사회안전망 확충에서

사회복지는 가족 분업으로 해결하던 육아, 노인부양, 간병, 실업 등의 문제를 현대적 복지제도의 분업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내 돈으로 고용한 간병인은 내 환자 1명만 돌보지만, 건강보험 재정으로 10명의 간병인을 고용하면 분업의 효율로 20~50명 이상의 환자를 돌볼 수 있다. 선진국이 복지를 강화한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첨단기술혁신에서 작업현장의 불량률을 낮추는 일상적 혁신에 이르기까지 혁신은 창발성(創發性), 즉 노동자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전제로 한다. 노조의 보호를 받는 10% 노동자의 고임금과 고용 경직성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경제가 생산성 향상과 혁신경제로 나가려면 노조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는 90% 노동자의 고용불안, 임금차별, 장시간·저임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근로감독을 강화해 노동이 존중받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실업과 빈곤의 공포에서 벗어나 청년이 공무원·공기업 시험에만 매달리지 않고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도전할 수 있을 때 노동자의 창발성도 가능하고 혁신경제의 문도 열린다.

소득주도성장의 목표는 복지 분업으로 사회위험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국민들이 삶의 여유를 갖고 모험적 혁신과제에 도전할 수 있는 사회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에서 보듯이 소득주도성장도 부작용이 있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응방안을 마련하면서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헬조선”에 도전하지 않고는 성장도 혁신경제도 없기 때문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쓴이 / 조영철

·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 전 국회예산정책처 사업평가국장

· 저서
〈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진로〉, 후마니타스
〈미국식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적 대안〉,당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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