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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와 금수저
흙수저와 금수저
  • 조휘갑
  • 승인 2017.09.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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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갑칼럼] “우리 집은 네 식구입니다. 저는 재건축 공사장에서 일하고 집사람은 식당종업원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26살인 큰딸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의류판매장에서 일하고 금년에 대학을 나온 작은딸은 취업원서 내기와 알바로 바쁩니다. 방 두 개짜리 전세이지만 변두리여서 방이 크고 뒷산 때문에 공기가 좋아 쾌적합니다. 작은딸이 졸업해서 돈 들어가는 데도 별로 없고, 세 식구가 돈벌이 하니 요즘은 적은 돈이나마 저축도 하며 그런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작은 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금수저냐 흙수저냐?’ ‘금수저지.’ ‘정말?’ ‘당근이지.’ 전혀 주저함이 없이 당당했습니다. 우리 집이 가난한데 네가 왜 금수저냐고 물었더니 ‘아빠, 나 사랑하지? 난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주는 아빠 엄마 그리고 언니가 있잖아. 나같이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 금수저 아니면 누가 금수저야? 우린 좀 가난한지 모르지만 행복하잖아요. 그래서 나는 금수저라고 생각했는데 뭐 잘못됐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은 어느 청취자의 사연에 대한 기억을 요약한 내용이다. 흔히 부모에게 물려받는 재산이 적으면 ‘흙수저’고 많으면 ‘금수저’라고 한다. 그러나 부모에게서 받는 것이 어디 재산뿐인가? 재능도 있고 용모나 건강도 있고 무한한 사랑도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재능이나 용모나 건강이 재산보다 몇 백배 소중할 수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타고난 재능을 살려 성공한 운동선수, 연예인, 학자, 사업가가 수없이 많이 있다. 회사원, 공무원, 교사, 군인 등으로 성공하기도 한다. 반면 부잣집에 태어났지만 평생 병원 신세만 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업 실패를 거듭하며 막대한 유산을 거덜 내는 사람도 있다. 20대에 천억 원 넘는 재산을 상속받고도 외로움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선택한 이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적장애 등으로 등록된 장애인 수가 2016년 말 기준 251만 명이다. 이들은 건강이 최고의 유산이요 금수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 요인도 실패 요인도 수없이 많다. 재능, 용모, 건강, 스승, 친구, 사업파트너는 물론이고 성격, 끈기 등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 되는가 하면 아무리 주어진 여건이 좋아도 운이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부모에게 물려받는 것도 있고 스스로 만든 것도 있다. 어느 것이든 성공과 행복을 위한 한 가지 요인에 불과할 뿐이다. 더구나 성공과 행복은 각자의 가치관에 달렸다.

몇 년 전 만 해도 흙수저란 말이 없었던 것 같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에게 대견하고 훌륭하다는 뜻을 표현할 때에도 ‘개천에서 용났다’고 했다. 그런데 흙수저라는 말이 생겨나 금수저와 결합하면서 위력적인 말이 됐다.

은수저’라는 용어는 서양에서 유래 됐다. 태어나자마자 유모가 젖을 은수저로 먹이던(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 극소수의 귀족층을 빗댄 말이다. 우리사회에서 은수저를 금수저로 바꾸고 흙수저란 말이 덧붙여진 것 같다. 이후 금수저-흙수저는 사회계급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금수저가 아니면 흙수저가 되는 식이다. 모두에게 해당하여 대중의 정서를 자극하기에나 편가르기에 적합한 말이 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SNS나 방송에서 ‘금수저’, ‘흙수저’로 계층을 나누는 표현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마치 일상용어처럼 쓰이고 있다. 흙수저 금수저가 빈부격차는 물론이고 가진자와 없는자, 사회적 약자와 강자, 권력층과 서민층 등 사회를 계급적으로 나누어 대립을 유발하는 데에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특히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툭하면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말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다. 사회갈등을 통해서 사회를 변혁시키고자하는 사회 계급론자들도 무산자나 노동자 또는 빈곤층이란 말 대신 편가르기에 용이한 흙수저란 말을 선호한다. 사회에 대한 증오를 유발하고 자신의 잘못을 애먼 사람 탓으로 돌리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다.

어떤 사회건 청소년들은 선배들의 성공스토리를 교훈삼아 자기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다. 청소년들이 흙수저-금수저의 이분법에 갇힌다면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면 미래가 없다. 흙수저-금수저란 말을 신중하게 생각해야겠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조휘갑 ( wkapcho@hanmail.net )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이사장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전)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원장
    (전) 공정거래위원회 정책국장, 사무처장, 상임위원
    (전) 경제기획원·통계청 과장/국장, The World Bank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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