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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사는 길
보수가 사는 길
  • 이도선
  • 승인 2017.07.0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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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선 칼럼> 보수는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졌다. 아주 처참하게 졌다. 유권자들이 보수를 철저히 외면한 결과다. “한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우리 사회의 보수성향을 원망하던 진보는 극렬한 촛불 선동으로 탄핵 정국을 휘어잡고는 “운동장이 거꾸로 기울었다”며 기고만장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파면도 그 연장선인 셈이다.

  보수의 궤멸은 작년 초 새누리당 공천 파동 때 이미 예고됐다. 친박(親朴)계의 막장 공천으로 당은 쑥대밭이 됐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2012년 총선에서 비박(非朴)계에 대한 ‘공천 학살’을 감행했다. 2008년 총선 때 친이(親李)계에 당한 뒤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가슴 쳤던 한을 앙갚음한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작년에 ‘망나니 칼춤’을 또 벌였으니 당이 쪼개지지 않는 게 외려 이상했다.

  공천 파동의 후폭풍으로 “180석도 거뜬하다”던 총선 판세는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졌다. 당 안팎에서 “이러다 집토끼(전통적 보수층)마저 떠나면 총선은 물론 차기 대선도 어렵다”며 친박 패권주의를 거듭 경고했으나 별무소용이었다. 진박(진짜 친박), 진진박(진짜 진짜 친박) 등에 이어 총선, 대선 모두 놓쳐도 당권만 부여잡고 ‘여왕 박근혜’를 옹위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옹박’에 이르러선 이미 볼 장 다 봤다.

  이후의 상황은 우려한 그대로 전개됐다. 과반수는커녕 더불어민주당에 1석 뒤진 2당으로 전락한 총선 대패가 몰락의 시발점이다. 비박계 무소속 당선자 복당으로 금세 1당으로 복귀할 기회가 있었으나 친박계가 어기대는 통에 국회의장도 넘겨줘야 했다. 파벌싸움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았고 급기야 야권이 주도한 대통령 몰아내기에 비박계 상당수가 동조하면서 탄핵소추안이 국회 의결을 거쳐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기에 이르렀다. 그 사이에 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당됐다.

  얼핏 보면 이 모든 사달이 최순실 국정 농단이란 뜬금없는 사건에서 비롯된 듯하나 국정 농단은 어느 정권에나 있었고 규모가 전보다 큰 것 같지도 않다. 원인을 달리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바로 보수의 분열이다. 박 전 대통령은 본인 주장대로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인지 모른다. 정치인생 18년 동안 한 푼 안 받았다는 게 생판 지어낸 말 같지는 않으니 재판을 통해 사필귀정을 기대해 볼만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만과 불통의 패권주의로 보수를 분열시킨 원죄마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두 달도 채 안 돼 국정 무너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느닷없는 원전 건설 중단, 총파업 등 안보, 경제, 사회 어느 하나 한가롭지 않은데도 알맹이 없는 ‘보여주기 정치’만 요란하다. 한미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한미 군사훈련 축소’ 등의 폭탄발언으로 워싱턴을 들쑤시고 대통령은 “사드 배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빨라졌다”는 유체이탈화법으로 한 술 더 뜨더니 막상 미국에 가서는 사드 배치 번복 의사가 없다고 공언하는 갈 짓자 행보가 그 전형이다.

  ‘인사가 만사’라지만 새 정부가 딱 그 짝이다. 전향도 안 한 주사파 출신을 떡하니 청와대 비서실장에 앉힌 것도 그렇지만 내각 인선은 가관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5대 중대 비리(병역 면탈, 논문 표절,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연루자의 고위 공직 원천 배제를 선언했다. 5대 비리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문제됐기 때문이란 황당한 논리에서다. 아니,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에도 숱한 이가 이들 비리로 낙마한 사실을 정말 모른다는 말인가? 그가 발탁한 국무총리, 부총리, 장관 후보자가 하나같이 5대 비리와 음주운전, 횡령 등으로 범벅된 대목에선 배신감마저 든다.

  이제 보수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나라가 결딴나도록 뒷짐만 쥐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자면 불문곡직하고 선거 패배부터 승복하는 게 순서다. 패배의 원인이 뻔한 터에 남 탓은 아무짝에도 못 쓴다. 처절한 자기반성만이 유일한 살 길이다. 야당으로 입장이 바뀌고도 정신 못 차리고 이전의 야당이 하던 못된 짓을 답습하는 것이야말로 자기들이 욕하던 불복이다. 일례로 정부의 일자리 추경이 잘못됐다면 야당들이 힘을 모아 부결시키는 게 순리다. 여소야대에서 그마저도 못하면 아예 포기해야지 심의조차 거부하는 국정 발목잡기는 보수의 자세가 아니다.

  지금은 정책 개발과 인재 양성으로 자강(自彊)에 힘쓰며 민심이 다시 돌아서기를 기다릴 때다. 보수의 적통을 다툰다며 인신공격과 막말을 서로 퍼붓는 못난 짓은 당장 때려치워야 한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모두 새 지도부 출범을 계기로 ‘건전한 보수’의 주도권을 놓고 건전한 경쟁을 펼치고, 나아가 대승적 차원에서 합당하는 게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최근 방한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변화’를 보수주의의 핵심 본질로 정의했다. ‘온정적 보수주의’로 영국 보수당을 재건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보수정당이 과거지향적이고 고루한 현재의 면모를 일신하지 않으면 유권자들의 외면을 돌이길 수 없다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yds29100@gmail.com ) 

    언론인,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전)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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