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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고려산 봄나들이
진달래꽃, 고려산 봄나들이
  • 허영섭
  • 승인 2017.04.2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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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허영섭칼럼>강화도에서 봄날의 절정은 고려산입니다.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인 능선을 따라 온통 진달래꽃의 잔치입니다. 분홍색 물감을 마구 뿌려놓은 듯한 그 아찔한 광경에 누구라도 한순간 숨결이 콱 막히게 되는 감동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산꼭대기까지 올라야 한다는 것이 봄나들이 치고는 숨 가쁜 일이지만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꽃구경입니다. 가까이 석모도와 교동도, 그리고 북한의 개성 방면까지 한눈에 구경하게 되는 것은 또 다른 흥취입니다.

올해도 고려산은 어김없이 진달래꽃 잔치판을 벌였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 진달래 피어나지 않는 곳이 없으련만 이곳의 군락지는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려산 높이(해발 436m)를 감안하면 그 능선 비탈에 펼쳐졌다고 해도 350m 고지는 기꺼이 넘어섭니다. 더구나 위도까지 높습니다. 진달래 꽃소식으로는 이미 남녘의 여수 영취산과 강진 주작·덕룡산, 대구 비슬산, 부천 원미산 등을 거쳐 며칠이나마 뒤늦게 전해진 이유겠지요.

그중에서도 고려산 진달래꽃은 색깔이 유달리 선명한 편입니다. 분홍색 중에서도 진분홍입니다. 겨우내 추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뿌리에서 잔뜩 뿜어올려 간직했던 붉은 색소를 한꺼번에 토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모처럼 봄을 맞고 있지만 꽃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짧은 봄을 한껏 원망하는 나름대로의 아우성인지도 모릅니다.

진달래 꽃잎을 따서 찹쌀가루 반죽으로 화전을 부치고, 오미자 화채에 띄우기도 한다는 것이 삼월 삼짇날의 전래 풍습이라는 점에서 이곳 꽃소식은 그만큼 늦어진 셈입니다. 이미 삼짇날이 지나간 지도 스무날 가까이 됩니다. 그 무렵 고려산에 올랐을 때는 아직 꽃망울이 드문드문 보일까말까 하던 정도였지요. 이곳 진달래꽃 시기가 다른 지역에 비해 그만큼 늦다는 얘깁니다. 올해 열 번째를 맞는 ‘고려산 진달래 축제’는 오히려 이번 한 주가 마지막 피크를 이룰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곳 산자락에 다른 꽃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길목마다 벚꽃도 피어 있고, 개나리도 피어 있습니다. 끝물일망정 산수유도 아직 노란 꽃술의 자태를 군데군데 뽐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참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 중턱 무렵에 이르러부터는 진달래 꽃길을 걷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만큼 진달래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군락지가 점차 넓혀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곳 정상에 오르는 여러 코스 중에서도 하점면 고인돌광장 쪽에서 시작되는 백련사(白蓮寺) 코스와 강화읍내를 지나 국화저수지 쪽에서 시작되는 청련사(靑蓮寺) 코스가 널리 이용됩니다. 그중에서도 굳이 추천한다면 청련사 코스를 추천하고자 합니다. 올라가기가 쉽다는 뜻이 아닙니다. 군락지를 반대편에 두고 오르기 때문에 정상 무렵에 올라서야 마지막 감흥에 한껏 도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이맥스 화면처럼 펼쳐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장엄한 서정시입니다. 감히 몇 구절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백련사 코스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 굽이를 올라서야 비로소 군락지를 눈앞에 두게 되는 데다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감흥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계곡을 따라 아침 안개라도 끼어 있을 때면 바로 눈앞에서도 분홍빛 흔들리는 움직임이 흐릿하기 마련입니다. 어느 꽃이라도 가까이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이곳 진달래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에서 군락지로 연결되는 나무 데크의 계단마다 상춘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까닭입니다.

전망대에서 꽃구경을 마친 다음에는 서쪽 능선을 따라 낙조봉에 이르러 미꾸지고개나 적석사(積石寺) 코스로 하산하게 됩니다. 고비고개로 내려가는 단축 코스도 있습니다. 옛날 고구려의 명장인 연개소문이 말 타고 뛰어놀던 자취가 고려산에 남아 있으며, 장수왕 당시 인도의 천축조사가 절터를 찾으려고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옛 얘기들은 진달래 꽃구경에 덧붙여진 하나의 덤입니다. 근처에 고인돌 무덤이 곳곳에 널려 있다는 자체로 강화도 전체가 전설의 고장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고려산이라는 이름도 원래 오련산(伍蓮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고려 왕조가 몽골에 쫓겨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오면서 바뀐 이름이라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일찍 피어난 꽃은 벌써 한 잎, 두 잎 바람에 흩어지고 있습니다. 꽃잎 떨어진 자리에는 파란 잎사귀가 돋아나고 있습니다. 봄날을 노래하는 진달래꽃의 감흥이 결코 길게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진달래를 ‘두견화’라고도 하고, 접동새를 ‘두견새’나 ‘귀촉도’라고 부르는 데도 비슷한 이유가 있을 듯합니다. 전해지는 배경 설화의 내용은 다르지만 미처 이루지 못한 젊은 날의 아쉬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서러움과 미련이 큰 만큼 접동새 소리 메어지고 진달래꽃도 더욱 붉어지기 마련입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지금 눈앞에 진달래꽃이 이렇게 무리지어 피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 그 모습을 넋놓고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계절이 허락한 축복입니다. 꼭 고려산 진달래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누구라도 더 늦어지기 전에 이 봄날을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허영섭 동서남북'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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