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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섭 금감원장은 ‘원님’인가
진웅섭 금감원장은 ‘원님’인가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4.2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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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 군림하고 감사원에 뺨 맞는 금감원은 이제 그만하라

 
은행이나 보험과 같은 금융권 종사자들에게는 금융감독원이 저승의 염라대왕과 같이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군대에 갓 입대한 사병들이 외박 때 저 멀리서 헌병(MP)의 그림자만 얼씬거려도 꼬리를 내리고 슬슬 피하는 것이나 진배가 없다.

필자는 지난 해 하반기 취임한 진웅섭 금융감독원을 유난히 눈여겨 봤다. 그가 취임 석달 만에 임원 인사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지방대 출신을 대거 기용한 데 이어 상고 출신 임원들을 요직에 발탁하는 것을 보며 세상이 많이 달라졌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 필자가 신문사 현역기자 시절 과천의 주요 경제부처를 출입할 때 경제기획원(EPB)이나 재무부(MOF)의 핵심 관료들은 대부분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온 학벌 엘리트층이었다.
 
지난 1994년 이 두 부처가 합쳐서 통합한 재정경제원, 외환 위기 때인 1998년 재정경제부, 그리고 현재의 기획재정부에 이르기까지 재정금융 정책을 담당하는 이른바 모피아(MOF+마피아)출신으로 성공한 인물 가운데 지방대나 상고출신들은 상당히 드물었다. 그만큼 좋은 학벌 출신들이 우리나라의 금융관료 엘리트층을 두껍게 쌓아왔다. 금감원도 마찬가지다. 금감원의 상층부는 기재부의 금융관료 출신들이 원장이나 부원장으로 직행하며 사실상 금융위-금감원 공동 모피아그룹을 형성해 왔다.
 
이런 금감원에 지방대와 상고 출신들이 포진했다는 것은 인사권자인 진웅섭 금감원장의 대단히 용기와 배짱이 아닐 수 없다. 출신과 학연, 지연 등을 배제하고 업무능력과 평판을 위주로 임원을 중용했다는 것이 당시 금감원의 공식설명이었다. 실제로 필자와 같은 사람들의 눈에도 최근 금감원 인사에서 학벌타파 경향이 두드러진다. 진웅섭 금감원장 자신도 포항 동지상고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건국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스스로 입지전적인 과정을 거처서 금감원의 수장이 된 만큼 훌륭한 인사를 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 하다.
 
그런데 금감원과 진 원장에게 매우 실망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주 감사원이 지난 201310월 경남기업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과정에서 금융감독원이 신한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밝힌 탓이다. 경남기업은 고() 성완종 전 회장이 운영하던 회사다. 감사원은 당시 금감원이 세 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한 경남기업과 관련해 다수의 채권금융기관들 요구를 듣지 않고 부당개입했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개입으로 무상감자없이 1000억원 출자전환이 실행돼 대주주에게 특혜를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사결과를 놓고 양 기관의 시각이 크게 엇갈린다. 감사원은 부당한 개입으로 특혜를 준 것이라고 금감원 징계 이유를 분명하게 밝힌 반면 금감원은 일부 채권단 의견을 전부인 것처럼 감사원이 몰아가고 있다는 반응이다. 감사원이나 금감원이나 국정운영상 중요한 국가기관이다. 일반 국민들로서는 감히 가까이 갈 수도 없는 엄청난 힘을 가진 외경(畏敬)스런 존재이다. 필자로서는 두 기관 간의 공방의 진위여부를 가릴 능력이 별로 없다다만 분명한 것은 경남기업의 3번째 워크아웃 과정에서 특혜를 주도록 채권단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다.
 
감사원은 금감원에 당시 관련 업무를 처리했던 팀장의 문책을 요구하면서 기업구조조정 지원업무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까지 줬다. 감사원이 밝혔듯이 금융감독 업무의 대원칙은 투명성과 공정성이다. 만일 금융감독이 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면 이는 국민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의 남용이다. 감독권이 잘못 쓰여지면 정상적인 금융생활이 뒤틀리고 경제생활이 마미된다. 궁극에는 피해를 보는 우리나라 금융소비자들의 대대적인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아쉽게도 금감원이 고유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는 정황은 또 있다. 금융기관 임직원을 원칙 없이 제재하고 검찰고발을 남용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이다. 정부 포상을 받은 금융기관 임원에 대한 제재를 감경해줄 때는 금융권역별로 규정 적용 여부를 다르게 판단하거나 부서별로 감경 여부를 달리했다. 금감원은 또 문책경고를 받은 임원이 위법행위를 다시 하면 제재를 가중하면서, 직무정지를 받은 임원이 위법행위를 또 하면 규정이 없어 제재를 가중하지 않아 감사원으로부터 제재의 형평성과 실효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한마디로 왕조시대의 고을 수령이 하던 것처럼 '원님재판식' 제재를 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조선시대 지방 고을의 송사를 가름한 원님 재판은 변 사또를 떠올리게 한다. 춘향이를 묶어놓고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고 호통치는 장면이 뇌리에서 겹쳐진다. 최근 금융당국의 제재가 원님 재판과 닮았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땅에 떨어졌다는 점에서다. 지난 해 여름을 뜨겁개 달궜던 KB금융 내분사태 때 금감원의 공정성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임영록 지주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징계결정을 놓고 줏대없이 수시로 오락가락한 탓이다.
 
두 수뇌부에게 중징계가 사전통보된 이후 제재안이 수정 의결되기까지 각종 로비설과 의혹이 난무했다.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금감원의 제재 보류를 요청하면서는 KB금융 쪽의 구명로비설이 전면에 부각됐다. 결국 중징계에서 경징계로 징계 수위가 완화되자, 정치권(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에선 모피아(재무관료+마피아)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현재 관행대로라면 앞으로도 금융당국의 제재는 끊임없는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소지가 높다.
 
따라서 금융회사와 임직원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할 제재지만 금감원이 혼자서 기소, 재판, 양형까지 다 하면서 원님재판으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됐다는 지적이다. 이번 경남기업 특혜대출 의혹도 마찬가지다. 성완종 회장이 대주주인 경남기업 워크아웃과 채권단 지원 과정에서 금감원 담당자의 부당한 압력이 사실로 확인된 가운데 과연 감사원 발표대로 금감원 국장이 '혼자서" 이런 일을 지시했을까 하는 의혹이 일고 있다만일 윗선이 있다면 담당 국장은 '깃털'일 뿐 '몸통'은 별로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얘기다.
 
금감원은 현재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 필자는 이제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 원장은 지난 달 한 포럼에 참석해 금융환경 변화와 감독방향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했다. 그는 물속에서는 물갈퀴를 바쁘게 움직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차분한 백조처럼 금감원을 운영할 것이라며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매의 눈으로 금융시장 및 금융회사 상황을 두루 파악하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은 금융회사 업무에 사사건건 개입하지 않고 큰 틀에서 금융시장의 정상화를 이끌어 나가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물론 옳은 말이다.
 
진 원장이 학벌·스펙보다는 실력 위주 인사로 혁신을 유도하고 있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가 취임 후 금감원에 인사혁신을 일으켜 이젠 사람도 조직도 진웅섭 체제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엔 대외적으로 추락한 이미지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칼을 들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금감원이 시장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일이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땅에 떨어진 마당에 혼자서만 아무리 "매의 눈으로 살피고 백조처럼 움직이는 금감원을 만들 것"이라고 외쳐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광야에서 금감원장 홀로 외치는 목소리가 시장에서는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 올 뿐이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금융소비자뉴스  발행인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언론학 박사)
한국언론인연합회 임원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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