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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적 가치와 '철권통치'
아시아적 가치와 '철권통치'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5.03.29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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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와 박정희..해외 조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은?

 
'싱가포르 국부(國父)'의 죽음-.

지난 23일 새벽 향년 91세를 일기로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는 아시아에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이 병립할 수 있는가를 놓고 지난 1994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벌인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 논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바로 리콴유는 "아시아인에겐 민주주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바탕 지상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
 
당시 리콴유 전 총리는 포린 어페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수천년간 아시아의 사상적 토대를 이뤄온 유교적 메커니즘으로 인해 서구식 민주주의의 이식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며, 아시아 만의 새로운 가치창출 만이 아시아 국가들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서구적 의미의 민주주의 개념은 동아시아에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같은 잡지에 기고를 통해 한국의 역사에 있어서 상향식 민의 형성은 한국의 전통이며 동학의 인내천 사상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제시하면서 한국의 역사에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은 이미 축적되어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유교의 왕도정치사상은 민의존중의 치세를 강조하므로 동양적 가치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하면서 리콴유 전 총리의 주장을 반박했다. 리콴유 전 총리는 19910월 한국을 방문, 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했으나 기대했던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논쟁을 벌이지는 않고 그대로 헤어졌다.
 
아시아적 가치'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이다. 미국과 유럽의 학자들이 당시 일본과 한국-홍콩-대만-싱가포르 등 '4마리 용()'의 고도성장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이들은 아시아는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급속히 발전하면서 경쟁과 효율성의 시장원리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인정에 기반한 공동체사회를 형성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또한 아시아인들은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유교-불교-이슬람교 등에서 강조하는 근면과 자기반성을 중시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의 히틀러로도 불리는 리콴유 전 총리는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곧잘 비유된다. 두 사람은 이른바 '철권(鐵拳)통치'로 나라를 다스렸다. 리콴유가 아시아적 가치논쟁을 불러일으켰다면 박전의 전 대통령은 한국적 민주주의같은 레토릭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어쨌든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지도자였다. 과거 개발경제 시대를 살아본 한국사람들은 아직도 개발독재라는 말에 익숙해 있다.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잠시 유보하더라도 오로지 경제발전에 매진해서 국민이 등따시고 배부르면된다는 논리다. 그런 측면에서는 아시아적 가치’이한국적 민주주의’이든 결국 본질이 같을 수도 있다.
 
독재권력의 편의대로 취사선택된 이데올로기로 무장을 해서라도 선진국이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국가발전 전략이 바로 개발독재의 편의적 발상이었다. 리콴유의 타계를 계기로 '싱가포르 판타지'가 우리나라 일각에서 일고 있다. 강력한 치안, 일벌백계의 가혹한 엄벌주의, 높은 국민소득, 분배보다 성장, 카리스마적 독재자에 대한 향수. 이런 가치를 실현해서 향유할 수 있다면 인권이나 표현의 자유 같은 건 조금 희생해도 된다고 답할 사람이 아마 지금 한국에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만큼 국민들이 현실을 살기가 팍팍하고, 가슴이 답답하기 때문일 것이다.
 
싱가포르는 선진국을 갈망하면서 정작 선진국의 강한 복지와 자유롭고 평등한 문화를 배척하는 '이율배반(二律背叛)'의 나라다. 이 나라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에 이르는 부국(富國)이다. 범죄율은 세계최저 수준으로 '여성과 어린이가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나라'로 유명하다. 실제로 거리엔 흔한 쓰레기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청결하고 쾌적하다. 싱가포를를 여행하면 마치 미국의 어느 지방도시를 여행하는 인상을 받는다. 
 
반면 싱가포르는 유례없이 가혹한 치안국가다. '벌금으로 통치하는 국가(fine country)'라고로 한다엉덩이를 깐 채로 '두들겨 패는 형벌''태형(笞刑)'이 아직도 남아있다. 또한 싱가포르는 빈부격차가 어마어마하다. 싱가포르의 빈부격차는 홍콩에 이어 세계 2위였다(한국은 16). 초대 총리 리콴유는 31년간 독재자로 군림했다. 아들 리셴퉁은 20043대 총리가 됐다. 싱가포르는 독재국가일 뿐 아니라 언론·집회의 자유가 질식된 나라다. 지난 2012년 언론자유도 순위에서 싱가포르는 135위를 차지했다. 1위는 핀란드였고 일본 22, 한국 44, 북한 178, 중국 174위였다. 언론 자유라는 측면에서 싱가포르는 중국이나 북한에 가까운 사회다.
 
중진국의 함정(middle income trap)’이란 말이 있다. 개발도상국이 중진국 단계에서 성장동력 부족으로 선진국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경제성장이 둔화되거나 중진국에 머무르는 현상을 말한다. 저소득국에서 중진국으로 성장한 나라들은 많다. 그러나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한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는 경제규모가 일정 단계에 이르면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데 새 동력을 갖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하면 한국은 이미 중진국 문턱을 넘어섰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게 맞을 것이다. 지난 해에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3만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 해 1인당 GNI는 전년(26,179달러)보다 7.6% 늘어난 28,180달러에 그쳤다. 2006년 이래 9년 째 2만 달러 대에 발이 묶여 있다. 더 큰 문제는 경제성장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다지난 해 3.3%에 그친 경제성장이 올해 더 나아지리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GNI 2만 달러대의 늪을 탈출하려면 경제 체질개선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지 못하면 끝내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는 중진국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짙다. 지금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동 개혁은 저힝에 부딪쳐 구조개혁의 진척이 더디기만 하다. 삼성-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의 차세대 '먹거리 창출'도 지지부진하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항상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카를 비트포겔(Karl A. Wittfogel)은 그의 저서 동양적 전제주의(oriental despotism)에서 전제군주를 선거한다고 해서 그가 덜 폭군적으로 되거나 온화해지지는 않는다고 썼다. 비트포겔은 중국을 모델로 이런 분석을 했었다. 그는  이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사회’의 개념을 채용하여 관개농업이 근간이 되는 전(前) 산업사회에 전제적 정부가 출현한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이것이 바로 동양적 전제주의다.
 
수력사회의 지배자들은 조직화된 대항세력의 존속을 허용치 않고, 독점관료제로서 무자비하고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적 리더십을 배타적으로 행사하여 사회 갈등 및 대립을 지배자의 통제아래 둔다. 그가 제시한 수력학적 가설은 오늘날 중국이 '왕'을 직접 뽑지 않는 사실상 봉건시대와 같은 통치제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유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지난 19876월 민주항쟁을 통해 힘겹게 대통령직선제 등 민주화를 일궈놓고도여전히 을 뽑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은 리콴유 전 총리가 타계하자마자 현지 조문방문을 발표하고 서둘러 취임 후 처음으로 해외조문을 떠났다. 생전에 박정희 대통령의 빅팬이었다는 리콴유에게 보이는 그 관심과 열의는 이해가 된다. 지금 한국에는 과거 리콴유와 김대중 대통령이 아시아적 가치를 놓고 지상논쟁을 벌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21세기판 한국적 민주주의를 놓고 퇴근 후 시중의 대포집에서 적지 않은 논쟁이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이 귀국하는 대로 싱가포르에서 보고 느낀 점을 놓고 기자회견이나 토론회에서 소신이나 경륜을 한번 밝히면 어떨까. 그것이 국민과의 중요한 소통의 일환이고, 국민들의 가려움이나 궁금증을 덜어주며, 리더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필자 소개>
 
 
   정 종 석
 (elton2023@hanmail.net ) 
 
금융소비자뉴스  발행인
세종대/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언론학 박사)
한국언론인연합회 이사
(전) 동아TV 대표이사 사장
(전)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경제과학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
 
* 저서 : 언론국제화의 마피아들(공저/나남,1995년)
* 논문 : 디지털 다채널 시대 - 채널브랜드 이미지가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박사학위, 세종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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