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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과 신격호
정주영과 신격호
  • 정진건 기자
  • 승인 2015.01.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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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주 퇴진' 롯데가와 1998년 '왕자의 난' 현대가

 
창업과 수성.

재벌가를 창업한 1세는 대체로 주도면밀하고 냉철하다. 때론 주변 사람들에게 가혹하다. 더욱이 가업을 승계받는 후계자를 정할 때는 예상을 불허하는 특유의 결단을 내린다. 자신이 세운 왕국을 적어도 100년이상 지키고 이어갈 사람을 선택하는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재계사를 보면 장자상속이 반드시 불문율은 아니었다. 삼성은 3남인 이건희회장이 대권을 이어받았다. 장남 이맹희회장, 차남 이창희 회장등은 경영수업과정에서 창업주 이병철회장의 눈밖에 났다. 현대차도 정주영 명예회장은 4남 정몽헌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했다가 옛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을 치러야 했다. 반면 LG는 장자상속전통이 철저하다.

롯데그룹이 창업주인 신격호 총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일본기업) 부회장의 퇴진을 계기로 한진에 이어 ‘오너 리스크’(owner risk)가 불거지고 있다. 롯데 2세 승계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주요 요인들은 지난 2000년에 '왕자의 난'을 겪은 현대그룹과 유사점이 많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최근 일련의 행보가 과거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당시 80대 중반으로 연로한 정 명예회장은 기존 현대그룹 후계 구도를 크게 뒤흔들었다. 장남인 정몽구 당시 현대그룹 회장을 2선으로 물러나게 하고 3남인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의장을 현대그룹 회장으로 임명했다.

롯데그룹 후계 구도가 옛 현대그룹처럼 '빅뱅'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일 양국의 롯데를 지배하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을 신 총괄회장은 28%, 포장자재 판매업체인 광윤사가 22%를 각각 보유한다.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도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20% 가량 각각 보유한다. 신 총괄회장은 광윤사의 지분도 절반을 갖고 있다. 따라서 신 총괄회장이 보유한 일본 롯데홀딩스와 광윤사의 지분이면 한·일 롯데를 모두 좌지우지할 수 있다.

롯데의 신격호 총회장은 올해 나이가 93살이다. 건강을 자신할 수 없는 고령이다. 그는 1년 내내 한국과 일본을 한달씩 오가며 짝수달은 한국롯데를, 홀수달은 일본롯데를 직접 챙기던 이른바 '셔틀경영'을 2012년 이후 중단했다. 또 지난해 10월 이후 하루에 보고받는 계열사 숫자도 평소의 절반으로 줄였다. 고령으로 기력 뿐만 아니라 기억력 저하 문제도 나타났다고 한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을 간혹 잊어버리곤 한다"는 전언이다.

현대가의 '왕자의 난'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창업주)이 85살의 고령이었다. 한 전직 고위임원은 "정 명예회장이 당시 오전에 사인한 내용과, 오후에 사인한 내용이 서로 달랐을 정도로 정상적 경영판단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두 회장이 모두 고령으로 비정상적 의사결정 행태를 보인다는 얘기다.그동안 롯데는 암묵적으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롯데, 차남인 신동빈 회장은 한국롯데를 각각 맡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도 2000년 사태 전부터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정공, 정몽헌 회장은 건설·전자·상선, 정몽준 의원은 중공업 등을 중심으로 승계작업을 진행시켰다. 하지만 마무리 작업에 시간을 끌다가 현대차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분쟁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룹 회장직도 1990년 중반 이후 정몽구 단독회장, 정몽구-정몽헌 공동회장 등으로 계속 바뀌며 불안정했다.

롯데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보여주는 불투명성을 앞날을 매우 우려스럽게 한다. 롯데는 사태 파악조차 제대로 못한 채 "우리도 정말 모른다"고 일관한다. 책임있는 대기업의 자세가 아니다. 현대도 내분 당시 경영권 승계와 관련, 최고 경영진의 의사결정 과정이 극도로 불투명했다. 내부에선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등 일부 가신그룹이 정주영 명예회장 주위를 둘러싼채 내부 편가르기와 전횡을 저지른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신 총괄회장의 보유 지분 향방에 관계없이 신 총괄회장 사후에 한·일 롯데의 경영권을 놓고 형제간 다툼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조현아 사태에 이은 롯데 사태로 한국 재벌의 오너와 승계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증거다. 재계 5위인 롯데가 최근 사업상 어려움에 이어 승계 리스크까지 현실화할 경우 그룹 및 국가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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