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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정명훈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 허영섭
  • 승인 2015.01.0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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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허영섭 / gracias1234@edaily.co.kr   언론인, 칼럼니스트.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허영섭칼럼>서울시립교향악단의 운영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가관입니다. 박현정 대표이사와 정명훈 예술감독 사이의 마찰입니다. 두 사람이 전면에 등장해 서로 치고받는 상황까지 이른 것을 보면 상당히 심각한 단계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박사로 삼성그룹 임원 출신인 박 대표와 세계적 마에스트로인 정 감독과의 다툼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들이 박 대표의 폭언 및 성희롱 사례를 지적하며 퇴진을 요구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습니다. 박 대표가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걸러지지 않은 막말과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박 대표는 “나에 대한 퇴진요구 배후에 정 감독이 있다”며 반격을 시도했고, 정 감독 또한 “인권유린은 용납할 수 없다”며 쐐기를 박고 나선 것입니다.

직원들이 공개한 내용으로 미루어 박 대표가 폭언 책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술집 마담 하면 잘할 것 같다”느니 “네 다리로라도 음반 팔면 좋겠다”, “월급으로 못 갚으면 장기라도 팔아야지”라는 등의 막말을 퍼부었다는 게 직원들의 폭로입니다. 직원들을 ‘쥐새끼’나 ‘저능아’로 표현했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모독을 참지 못해 직원 절반 정도가 퇴사를 했다는 것이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정 감독이 자신의 퇴진을 유도하기 위해 뒤에서 폭언 사태를 이용하고 있다며 화살을 돌리고 있습니다. “서울시향이 마치 개인의 사조직처럼 움직여 왔다”며 “회계처리 규정이나 개별 영리활동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게 되면서 정 감독이 불편을 느꼈던 것 같다”고 얘기합니다. 정 감독의 개인적인 필요와 요구에 따라 서울시향의 규정과 절차가 수시로 무시돼 왔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안도 등장합니다. 정 감독이 서울시향보다 자신의 개인 재단인 ‘미라클 오브 뮤직’ 활동에 주력해 왔으며, 서울시향 예산에서 호텔비를 전용했고, 사전승인 없이 피아노 리사이틀 순회공연 일정을 발표하는 등의 전횡을 저질렀다는 것이지요. 박 대표는 서울시향을 ‘정명훈 왕국’으로 비유하면서 “이처럼 나태하고 방만한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쉽지 않았다”고 토로합니다.

이와는 달리 정명훈 감독은 박현정 대표의 폭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는 인권에 대한 문제이며, 인권침해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울시에 감독직을 그만두겠다고 했다”며 단호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박 대표 체제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자신이 사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박 대표와 자신 가운데 어느 한 명을 택일하라는 압박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그는 박 대표가 공개적으로 지적한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나에 대해 이상한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잘못한 것이 있으면 알려지게 될 것”이라는 정도의 언급뿐입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정 감독의 처신과 관련해 비슷한 문제점들이 터져나왔던 터라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원칙의 문제로 따진다면 정 감독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이번 논란을 ‘예술'과 '경영'의 시각 차이에서 빚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원칙의 문제를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박 대표의 막말 횡포가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정 감독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정 감독은 자신에 대한 지적에 대해 명백히 해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지적된 개별 사안들을 젖혀놓는다 해도 서울시향이 전적으로 개인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문제입니다. 연간 140여회 공연에 10만명 이상의 관람객 유치를 자랑하는 서울시향이 ‘정명훈 이후’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지휘자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과 ‘1인 독주체제’를 유지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사조직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현재 3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런 식이라면 사실상 종신직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합니다. 정 감독이 지금껏 9년간이나 장수하고 있는 것이 그런 결과입니다. 서울시향이 세계적인 음악가를 모시는 게 잘못이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가 세계 정상급 지휘자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지만 연간 20억원이라는 보수가 문제입니다. 서울시향이 그만한 부담을 무릅써가며 그를 계속 위촉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기회에 서울시향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새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뉴욕이나 베를린, 파리의 오케스트라와 똑같은 기준과 방식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요구가 없지 않겠으나 다른 분야는 젖혀두고라도 서울시향만 그렇게 운영해야 하는지 과연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서울시향이 민간 영리단체가 아니라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정 감독이 한국이 낳은 걸출한 음악가로서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는 사실은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위상을 높인 주인공들은 각 분야에서 수두룩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어렵게 자신의 길을 닦은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이러한 영웅들에게 서울시는, 또 우리 정부는 어떤 대접을 하고 있을까요. 왜 유독 정명훈에 대해서만 ‘음악 귀족’ 대우를 해줘야 하는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를 우리 손으로 흠집내는 게 안타깝다”며 그를 두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대한 보수를 받으면서도 다른 식으로 문제를 야기한 게 사실이라면 무작정 감싸고 도는 태도가 더 문제입니다. 예술인이라고 해서 규정을 어기라는 특권을 부여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술성이 뛰어날수록 오히려 도덕적으로도 깨끗하다는 얘기를 들어야 마땅합니다. 이제 “정명훈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변을 구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허영섭 세상만사'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허영섭 / gracias1234@edaily.co.kr

 

언론인, 칼럼니스트.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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