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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정치'
'직업으로서의 정치'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09.1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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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실종의 시대-정치부재의 책임

 
미국은 직업정치인이 많은 나라다. 보통 30년 이상을 대를 물려가면서 평생 정치인이 된다. 미국 정치사상 1백세까지 현역으로 일한 스트롬 서몬드 전 상원의원은 47년 동안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다. 작년에 사망한 일본계 미국인 대니얼 이노우에는 50년간 미 연방상원 의원 가운데 최장수 의원으로 봉사했다.

 평생 직업이 하원의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존 딘젤 연방 하원의원은 올해로 무려 만 58년째 연방의원직함을 달고 있다. 그는 86세 고령임에도 지난해 말 총선에서 68%의 높은 지지율로 30선에 성공했다. 올해 77세인 바바라 미컬스키 상원의원은 37년간 여성 상원의원을 하고 있다.
 
이들의 장수비결은 지역구에서 탄탄한 지지기반을 갖기 위하여 유권자들을 친구나 가족처럼 돌본다는 것이다. 미컬스키 의원처럼 자기 출생지인 볼티모어에서 사회사업가(social worker)로 활동하기도 한다. 빈민 아동들과 시니어들을 돌보며 교육을 시켜 주거나, 청소년들의 성공을 옆에서 조력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젊은이들이 정치인의 꿈을 갖고 어려서부터 이를 착실히 준비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현역 정치인들 중에서도 봉사정신이 투철한 청년들에게 미래의 훌륭한 정치를 권하면서 그들을 돕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이다.
 
(1)대학 졸업 후 지역구 봉사직업을 선택 한다 (2) 리더십과 코칭 분야에서 석.박사 학위를 하면서 지역구 청소년을 돕는다 (3)30세 전에 구의원이나 군의원에 도전하고 지역구를 넓혀 나간다. 40세 전에 시의원, 도의원 그리고 50세 전에 국회의원에 도전한다 (4)일생동안 국회의원으로 일하면서 각종 봉사를 하고, 아들이나 딸에게 자리를 물려준다.  
 
미국의 경우 어릴 적부터 이른바 '준비된 정치인' 수업을 착실히 밟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청,장년 시절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 어느 날 변신 끝에 정치인이 되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최근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내 아이가 가장 하지 않았으면 하는 직업이 정치인으로 나타났다. 또 미래의 남편 중 최악의 직업은 정치인이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그만큼 정치인이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이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불신의 대상이라는 의미다. 정치인도 정치인 나름이고, 나라와 남을 위해 봉사한다면 얼마든지 존경을 받는 직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가 찬사보다는 지탄을 받는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요즘 정치와 사회가 매우 혼탁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추석절에 귀향활동을 한 정치인들은 고향이나 지역구에 가서 야단을 많이 맞았다고 한다. “제발 좀 정신 똑바로 차려라” “(이럴 바에야)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등등..
 
격랑의 시대-. 이 시대 우리나라 정치가는 어떤 덕목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고대 중국의 성군이라고 불리는 ', , ' 임금과 같은 덕목을 가져야 할까. 아니면 학처럼 고결하고, 청렴한 삶을 살아야 마땅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충무공 이순신 장군처럼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는 마음가짐으로 자기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일까. 마땅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필자는 지금 정치실종의 시대를 맞아서 우리나라에서는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정착하지 못한 것이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진정한 정치가 없고, 정치꾼 만이 양산돼 판을 치는 가운데 여야가 정책은 없고 정략과 당파성으로만 뭉쳐서 싸우기만 하는데 이력이 난 까닭이다.
 
문득 국회의원을 두 번씩이나 하고 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유시민 씨가 떠오른다. 유 씨는 지난 해 2"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다"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런데 올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자신의 입지를 키우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싸가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싸가지 없는 정치인 하면 으레 유시민이 떠오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지난 2010년 하반기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15%대를 기록하며 진보진영 내 최대 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런 그가 정계 은퇴를 한다고 했을 때 진보진영의 새 판짜기가 불가피하게 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가 없는 정의당이 앞으로 도래할 야권발 정계개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할 지 이목이 집중됐었다.
 
그런데 필자는 당시 그가 정계은퇴를 했다는 소식이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비세(卑勢)에 몰릴 때 정계은퇴를 했다가 마음이 바뀔 때 슬그머니 약속을 뒤집고 현실정치로 복귀하는 사례를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최근에도 여러 방송에 나와서 현실정치에 특유의 독설을 퍼붓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그만 두겠다며, 일종의 정치적 절연 선언을 하고 떠난 그가 사실은 떠난게 아니고 돌아온 것이다. 일종의 돌아온 장고. 세월호 참사를 가리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사람들 엄청 죽고 감옥 갈 거라고 말씀드렸었는데 불행히도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다"는 내용을 정의당이 지난 6.4 지방선거 홍보용으로 공개한 정치토크쇼 동영상에 올렸다. 물론 '불행히도'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박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공격한 셈이다 박 대통령을 일컬어 폭군은 아니나, 일종의 혼군(昏君,판단이 어두워서 우매한 임금)”이라고 격하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볼온한 자유주의자’, ‘지식 소매상이란 말을 많이 들어왔다. 재주는 있으나 싸가지가 없다는 말도 무수히 들었다. 필자가 볼 때는 그는 직업정치인을 은퇴했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직업정치인처럼 행세를 하고 있다.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꾼처럼 느껴지는 언행을 하는 탓이다. 일종의 이율배반적인, 야누스적인 정치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발끈 발언도 화제다. 엊그제 당 소속 의원이 주최한 씨름 협회 행사에 참석했다가 "의원들이 입씨름 대신 실제로 씨름대회를 한번 하라"는 지적을 받고 발끈했다고 한다. 세월호특별법 제정 등을 둘러싸고 넉달 넘게 대치하며 단 한건의 법안 처리도 못한 국회를 겨냥한 언급이었다. 김 대표는 이를 정색하고 되받았다. 그는 "우리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씨름인 여러분들한테 조롱거리가 되는 것에 대해 참 기가 막힌다""아무리 그렇지만 우리 면전에서 우리를 그렇게 조롱한다는 게 과연 여러분 기분이 좋으신지 다시 한번 생각해주시기 바란다"고 다소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필자는 신문사 정치부 기자 시절부터 김 대표를 잘 안다. 1980년대 그가 김영삼 총재의 상도동 비서 시절 처음 만났다. 김 대표는 통일민주당 당료와 YS 때 청와대 민정 비서관, 내무차관을 거쳐 199615대 국회 때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그가 같은 해 국회 통일대비 의원 연구모임소속의원들과 백두산과 베이징 등 중국 여러 곳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그들을 동행 취재하기도 했다.
 
요즘 김 대표의 심정은 누구보다 초조할 것이다. 여당 대표로서 최장 기간 국회 공전이라는 신기록을 세우는 것이 유쾌할 리 없다. 여야가 만날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도 싫을 것이다. 대표로 역할을 하고 싶지만, 야당은 당 대표도 없는 상태다. 의욕적으로 취임한 뒤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면서도 마음의 여유가 없고 반응이 예민하게 나왔을 법 하다.
 
하지만 국민들이 김 대표에게 기대하는 리더십은 외부 자극에 이렇게 즉각적이고 짜증스러운 반응을 내놓는 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만간 국회를 정상화시켜 놓고, 여야가 친선 씨름대회라도 열어 단합의 기회로 삼겠다"고 한걸음 더 치고 나갔다면 그게 더 그답다는 평가를 들었을 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팍팍하고 짜증스러운 일이 많은 국민들이 여당 대표의 정색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를 잘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렇지만 힘들어도 이를 위트로 받아넘기고 해학으로 풀어나가는 지혜가 아쉽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월호 특별법에 가로 막혀 정치와 사회가 총체적 난국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이 참에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제대로 하는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세간에서는 일반적으로 현직 국회의원을 직업 정치인라고 부른다. 국회의원과 선거로 뽑히는 각 지자체장(도지사,시장, 군수, 구청장)과 대통령은 예산의 사용과 정책 결정 및 집행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직업정치인이다. 사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또는 여야 정당 주변을 가보면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경우가 확연히 대비된다. 직업 정치인은 주로 현역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당의 유급 당료들이다.
 
하지만 전직 국회의원이나 비상근 당료들, 그리고 다른 직업이 있는 당 관계자들은 비직업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월급이나 고정적인 급여가 없는 탓이다. 심지어 전직 국회의원들 가운데는 제대로 된 수입이 없어서 자동차는 물론 생활고를 겪는 분들도 적지 않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한 독일의 저명한 사상가인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을 두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정치를 위해서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에 의존하며 사는 것이다. 정치를 위해서 사는 사람은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인 반면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은 정치를 지속적인 경제적 소득원으로 삼고자 한다고 분류했다그는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가는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버는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 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사람, 그리고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 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정치에 대한 소명의식을 지닌 사람은 돈과 권력, 명성을 크게 주지 않더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권자의 충직한 대리인으로 공동체에 공헌하는 인물이다.
 
정치인들이 국민들로부터 늘상 욕을 먹는 데도 선거철마다 정치지망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의 정치인인) 남자가 선호하는 직업은 바로 정치인이다. 심리적으로 남자의 욕구를 잘 충족시켜주는 직업인 덕분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은 꽤 좋은 직업이다. 어릴 적부터 준비된 미국의 정치인과는 달리 정치와는 상관없는 인생을 살다가 결국은 정치판에 뛰어든다. 그들이 어느 정도 경제적 풍요와 지위를 가졌음에도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과연 뭘까.
 
사람부리는 재미를 실컷 볼 수 있다..특별히 모셔야 할 상사가 있는 것도, 눈치 주는 고객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자신이 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와 남에게 증명할 수 있는 200여 가지 특권도 주어진다.. 이런 저런 명목으로 연간 나랏돈 5억 원 정도를 쓸 수 있다.. 항공기를 일등석으로 무료 탑승할 수 있고 장관급 의전을 받는다.. 해외 시찰을 빙자한 해외여행도 무료로 지원받는다.. 무엇보다 고위 공무원들이나 재벌들을 쥐 잡듯 잡을 수 있다.. 현행범이 아닌 이상 죄를 지어도 웬만하면 체포되지 않는 불체포 특권이나 면책특권같은  엄청난 권력이 있다..
 
경제적 풍요와 인맥이 형성되어 있는 사람이 늦은 나이에도 정치에 빠지는 이유는 당선만 되면 뭔가 권력을 손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치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그러나 막상 정치인이 되면 국민들을 위해서 지혜를 모으는 모습은 별로 볼 수 없다자신의 권리와 욕심을 채우기가 급급하다. 그렇게 채운 재력은 차기 선거를 위해 쓴다일반 국민이 보는 우리나라 정치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막스 베버는 우리가 생각하는 '직업 정치가'에 대한 속성을 설명한다. 여기서 2014년 대한민국의 단면을 발견하기도 한다. 정당 정치와 정부 관료들이 필연적으로 갖는 속성과 위험성에서부터 우리 국민들이 그들에게 어떤 점을 기대하고, 못 믿는지 등과 같은 부분이다. 현실에서 막연히 느끼던 부분을 눈앞에 그려준다. 예컨대, 부산저축은행 사태, 그랜저 검사, 뇌물수뢰 관료 등 세상사 부조리와 모순덩어리의 사건들을 말이다.
 
베버는 이상적인 직업 정치가의 모습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칠 수 있는 사람. 열정과 책임감과 균형감각을 갖춘 정치인을 말한다. 100년 전에 말한 정치가의 모습과 우리가 진정 바라는 정치인의 모습이 같다. 웃음과 씁쓸함이 함께 느껴졌던 부분이 있다. "왜 당신들은 당신들 스스로가 공공연히 경멸하는 그런 정치가들이 당신들을 통치하도록 합니까?" "우리는 당신들 나라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침을 뱉는 관료를 가지기 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침을 뱉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관료로 가지고자 합니다."
 
베버의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100년 후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건넨다. 우선 주민들과 소통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그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천력을 지닌 후보자이면 좋을 것이다. 정치인은 단순히 선의가 아닌 실행가능한 리더십과 비전을 갖춰야 한다. 정보화시대에 성공하는 정치인은 경청과 소통, 공감과 신뢰의 길을 걸어야 한다. 아울러 소명의식을 지닌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출된 국회의원은 바로 그들을 선출한 국민들의 수준이자 거울인 까닭이다.
 
세월호에 발목이 잡혀서 국정이 한치도 못나가는 2014년 한국의 현실-정치에 의존해서 뭔가 부산물을 챙기는 후진적 정치인들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정치 자체를 위해서 일하는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들이 우리나라에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대다. 어려서부터 싹수있는 재목을 골라서 '준비된 정치인'을 키우고, 그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이끌어 가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정치인이 도매금으로 국민들로부터 매도당하지 않고,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에 의해서 움직이는 바람직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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