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사 (1,710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74)충주 지씨(忠州池氏)-118,211명 시조 지 경(池鏡, 903~1003)은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960년(고려 광종 11)에 귀화했다. 당시 태학사로서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정착하여 벼슬이 금자광록대부 태보, 평장사에 이르렀다.그 뒤 지 경의 6세손인 지종해(池宗海)가 충주에 살았으며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로 충주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충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시조 지경의 묘는 평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46 (73)능성 구씨(綾城具氏)-120,503명 시조 구존유(具存裕)는 고려시대 벽상삼한삼중대광 검교상장군에 이르렀다. 그의 장인인 주 잠(朱潛, 신안주씨 시조)은 송나라 한림학사로서 송나라가 몽골에 패망하자 1224년(고려 고종 11) 망명하여 금성(나주의 옛이름)에 정착하였다. 주잠이 능성에 살며 2남1녀를 두었는데 딸이 구존유와 혼인하여 능성에서 살게 되자 구존유가 능성을 본관으로 하였다. 본관 능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44 (72)김해 허씨(金海許氏)-121,031명 허(許) 씨는 가락국 김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에서 시작된다. 허황옥은 아유타국(인도의 한 나라)의 공주다. 그는 16세(48년) 때 배에 석탑을 싣고 지금의 경남 창원시에 있는 부인당(夫人堂)으로 들어와 정박했다. 그 뒤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이한다. 수로왕과 허황후(許黃后)의 혼인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국제결혼으로 기록되고 있다. 수로왕은 10남 2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43 (71)진주 하씨(晋州河氏)-121,054명 진주하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3개 파가 있다. 고려 목종 때 중랑장으로 있으면서 거란과의 분쟁에서 항절사로 목숨을 바친 ▲하공진(河拱辰)을 시조로 하는 시랑공파, 고려 정종과 문종 때의 ▲하 진(河珍)을 시조로 하는 사직공파, 하 진보다 조금 후대의 ▲하 성(河成)을 시조로 하는 동정공파가 있다. 진주를 본관으로 한 연유는 하공진이 진주에서 태어났으며, 하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40 (70)함양 박씨(咸陽朴氏)-123,688명 시조 박언신(朴彦信)은 박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의 셋째 아들로 속함대군(速咸大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함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속함은 함양의 옛 이름이다. 본관 함양은 경상남도 함양군의 지명이다. 함양은 신라 때 속함군(速含郡) 또는 함성(含城)으로 불렸다.중시조이자 1세조는 고려조 예부상서를 지낸 박선(朴善)이다. 그의 묘소는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37 (69)영월 엄씨(寧越嚴氏)-124,697명 시조 엄임의(嚴林義)는 고려 때 호부원외랑을 지냈고 나성군에 봉해졌다. 그는 본래 중국 한나라 엄자릉의 후손이다. 통일신라 때 당나라 현종이 새로운 악장(樂章)을 만들어 여러 나라에 전파할 때 엄임의를 정사로, 영월신씨(寧越辛氏)의 시조인 신시랑을 부사로 파견, 우리나라에 왔다. 엄임의는 그 뒤 영월 땅 행정에 눌러 살게 됨으로써 영월엄씨의 시조가 되었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35 (68)함평 이씨(咸平李氏)-125,419명 시조 이 언(李彦)은 고려 광종 때에 신무위 대장군으로 봉해졌다. 이어 충숙왕때 그의 고손 이광봉(李光逢)이 좌명공신으로 함풍(咸豊.함평의 옛이름) 부원군에 봉해졌다. 함풍은 함평의 옛 이름이다. 그 뒤 여러 대에 걸쳐 함평에 살면서 후손들이 함평을 본관으로 삼았다.함평 이씨는 대장군을 지낸 4세손 이순지의 후손들이 크게 번성한다. 특히 조선 초기에 가문을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32 (67)담양 전씨(潭陽田氏)-128,007명 시조 충원공 전득시(田得時)의 익호(瀷號)는 충원(忠元)이다. 그는 고려 중엽 때 전남 담양에서 출생하고 고려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좌복야, 참지정사에 이르렀으며 담양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담양을 본관으로 삼았다.담양전씨는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틀어 문과 급제자 127명, 봉군 15명, 판서급 22명, 정승 3명 등을 배출한다. 시조 전득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30 (66)양천 허씨(陽川許氏)-130,286명 허(許) 씨는 김해김씨와 뿌리가 같은 성씨이다. 김해김씨의 시조 김수로왕은 배를 타고 우리나라 김해에 온 아유타국(오늘날 인도 부근)의 공주와 결혼해서 열 명의 아들을 낳는다.그 중 둘째 아들에게 허씨로 사성(賜姓)한다. 왕비의 본성이 허씨라 자기 성이 이어지기를 바란 왕비의 간청 때문이었다. 그 뒤 김수로왕의 10세손 구해왕이 신라에게 항복하자 그 자손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28 (65)천안 전씨(天安全氏)-133,074명 우리나라 모든 전(全) 씨의 시조는 환성군 전섭(全攝)이다. 온조가 부여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건국할 때 온조를 도운 10명의 공신 중의 한 사람이다. 전씨는 전섭을 시조로 하여 여러 파로 갈라진다.천안전씨의 관조 전 악(全樂)은 전 섭의 16세손이다. 서기 927년 왕 건은 전이갑, 전의갑, 전 악 등 전씨 일가 3명과 신숭겸 등을 장수로 삼아 대구 팔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26 (64)전의 이씨(全義李氏)-133,237명 시조 이 도(李棹)의 처음 이름은 이 치(李齒)였다. 공주 출신으로 왕 건이 후백제의 견 훤 정벌에 나섰으나 금강 홍수로 더 나아갈 수 없게 되자 이 치가 묘책을 찾아 강을 건너는데 성공했다. 이에 왕 건이 그에게 ‘배를 젓는다’는 뜻의 노도(棹)자를 사명(賜名)했다.이 도는 말년에 군사 요충지인 전의현(全義縣)에 산성을 쌓고 이곳에서 살았다. 그 뒤 후손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24 (63)제주 양씨(濟州梁氏)-133,355명 모든 양씨의 시조는 탐라 개국설화의 삼신인 중 한사람인 양을나(梁乙那)다. 양씨는 제주, 남원 등 몇 개 본관이 있으나 모두 제주에서 분관되었다. 제주도에 분포된 토박이 양씨를 제양(濟梁), 육지에 널리 퍼져 있는 양씨를 육양(陸梁)이라 부른다.중시조 양 순은 682년(신라 신무왕 2년) 신라에 입국하여 국학에 입학하고 한림학사가 되었다. 그러나 대신들이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21 (62)한산 이씨(韓山李氏)-136,615명 한산 이씨는 같은 뿌리이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로 나뉜다. 호장공계(戶長公系)의 시조 이윤경(李允卿)은 고려 중엽에 권지호장(權知戶長)을 지냈다. 호장이란 12목(牧)의 향리(鄕吏) 중 당대(堂大)의 위계(位階)를 말한다. 호장의 직책은 풍속을 바로 잡는 것이었다. 고려 성종 때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지방의 명망가나 호족출신이 맡았던 것이어서 한산이씨의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18 (61)평해 황씨(平海黃氏)-137,150명 우리나라 황씨의 시초는 중국 후한 때 한학사(漢學士)였던 황 락(黃洛)의 후예이다. 그는 서기 28년(신라 유리왕 5)에 후한(後漢)의 유신으로 구대림(丘大林-평해구(丘) 씨의 시조) 장군과 함께 교지국(옛 월남의 한 지방)에 사신으로 갔다.그 때 풍랑을 만나 평해에 표착(漂着)하여 정착하여 살았다. 그 뒤 황 장군이라고 하면서 우리나라 황씨의 시조가 되었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2 12:15 '빚 돌려막기' 우려가 현실로-.부동산 규제 완화가 본격화된 지난달 주택담보대출이 빠르게 늘어난 가운데 주담대로 빌린 돈을 마이너스 통장 등 신용대출 상환에 쓰는 경우가 늘어났다. 저금리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고금리의 빚을 상환하는 '빚 돌려막기'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8월 중 은행권 마이너스 통장대출 등 기타대출 순증액은 '제로'였다. 2011년부 칼럼 | 강민우 기자 | 2014-09-12 01:09 담배와 조세저항 구름과자(담배)의 ‘마술’-.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조세저항이 극심한 직접세보다는 비교적 조세저항은 적으면서 많은 세수를 올릴 수 있는 담뱃세 같은 간접세 징수 방식이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조만간 담뱃세를 올릴 모양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가장 효과적인 금연정책은 담뱃값 인상”이라며 “2500원인 담뱃값을 4500원 수준으로 인상하겠다 칼럼 | 정진건 기자 | 2014-09-11 17:02 (60)반남 박씨(潘南朴氏)-139,438명 (60)반남 박씨(潘南朴氏)-139,438명 시조 박응주(朴應珠)는 고려 고종 때 반남현의 호장(戶長)을 지냈다. 그래서 후손들이 반남을 본관으로 삼았다. 반남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지명이다. 이곳에는 시조의 묘소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한다.박응주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박 의는 어느 지관에게 명당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지관은 자미산에 올라 흥덕리 동쪽에 묏자리를 잡아주었다. 그러나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6:13 (59)현풍 곽씨(玄風郭氏.포산)-140,283명 시조 곽 경(郭鏡)은 원래 송나라 관서지방 홍농 사람이다. 1133년(고려 인종11)에 귀화하여 평장사문하시중에 이르렀으며 포산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포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조선시대에 포산이 현풍으로 개편되어 현풍으로 개칭하였다. 지금도 포산곽씨(苞山郭氏)라고 쓰는 후손들이 있다.현풍곽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덕가문이다. 조선조에 정려(旌閭)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6:11 (58)강릉 최씨(江陵崔氏)-140,854명 강릉 최씨는 시조를 다르게 하는 3계통의 최씨가 있다. 경주계의 시조 최필달(崔必達)은 고려 개국 때 태조를 도와 삼한벽상공신으로 좌정승이 되고 경원(강릉) 부원군에 봉해져서 본관을 강릉으로 하였다. 경주계의 인물 최치운(崔致雲)은 시조 최필달의 17세손으로 세종 때의 명신이었으며 특히 형옥(刑獄)에 밝아 왕명을 받고 '무원록(無寃錄)'을 주석하였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6:08 (57)정선 전씨(旌善全氏)-141,380명 우리나라 모든 전(全) 씨의 시조는 전 섭(全攝)이다. 그를 시조로 하여 여러 본관으로 갈라졌다. 2000년 현재 정선전씨 141,380명, 천안전씨 133,074명, 옥천전씨 43,920명, 용궁전씨 27,706명, 전주전씨 16,434명, 옥산전씨 15,659명, 경산전씨 14,742명, 죽산전씨 11,229명, 완산전씨 7,568명 등이다. 본관 정선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9-11 16:05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818283848586끝끝